매거진 Essay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던 나에게

by 모래


며칠 전에는 내가 발을 담고 있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선배의 강연을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작업물. 20여 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아직까지도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녀가 참 부러웠다. 강연 내내 이 일을 애정하는 그녀의 열정이 뚝뚝 묻어 나와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매사 꾸역꾸역, 버겁게 일을 쳐내고 있는 나는 자격미달처럼 느껴졌달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무용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루하루 살아감이 그저 견디는 것 같을 때. 앞으로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라는 무력한 회의감이 들 때. 그래서 다가올 내일이 더는 기대되지 않을 때. 나의 의지로 무언가 해냈다는 감각이 점점 흐려질 때마다 나는 더욱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나보다 간절한 사람들.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사람들. 이 일을 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게 맞을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보다는 저런 사람들한테 주어지는 게 응당 맞지 않을까?


그들을 보면서 나는 나만의 의미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내게 의미는 신기루와도 같아서 찾을수록 멀어지고 사라졌다. 어쩌면 신화 속의 이야기,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건 아닐까 라는 의심마저 들던 어느 날 우연히 6년 전 내가 비슷한 시기에 스크랩해 둔 두 편의 글과 마주했다.


바람은 허공을 채우려는 새들의 날갯짓을 믿는다.
공중에 적어둔 말이 흩어지고 우리,
바쁜 하루를 하늘에 놓아두고 살아갈지라도.

빈 병에 꽃을 꽂아두는 일이나
언젠가 보낼 편지지를 고르는 일이
의미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빈손을 채울 당신의 손을 맞잡는 날에
한 마리 새가 우리를 향해 날아오리란 걸 안다.

나는 더는 마음을 갈구하지 않고 의미를 찾으려 헤매지 않는다.
의미는 찾는 것이라기보다 만드는 것이어서
의미를 만들다 보면, 마음을 찾아서.

바람은 허공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사랑을 믿는다.

(DAY6, <The Book of Us> Prologue Film)


다른 인턴들과 이야기해 보니 의외로 내가 생각했던 해답은 손쉽게들 생각해 냈던 것 같지만
누구에겐 쉬운 해답이더라도 나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 앞의 도전들,
크고 작은 어려움에 맞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내게는 그렇게 해서 찾았던 그때그때의 해결책, 해답, 결과보다는
무던히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견뎠던 그 시간들이 변함없는 단 하나의 해답이었던 것이다.

(채널A, <굿피플> 14회 중)


나는 내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지만 무엇이든 계속해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득바득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날이 지나고, 이제는 의미를 찾는 것마저 지겹고 버거워질 때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씻지도 않고 잠으로 도망쳤다.


반대로 어떤 날은 이상하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마주하게 될 내일이 두려워서. 오늘을 조금이나마 유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르륵 감기던 눈에 정신을 번쩍 떠보면 어느새 기다리지도 않은 내일이 나를 놀리듯 서 있었다. 야속했다.


아직도 근사한 삶의 의미,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두 편의 글을 보면서 완성된 의미를 찾기보다는 앞으로 만들어가 봐도 되겠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희미하게 고개를 든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냐는 물음 앞에서 우물쭈물 망설이다 타야 할 버스를 놓친 어린아이 같았던 나는 과거의 내가 그어둔 문장에서 오늘의 답을 엿본다.


나는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다 그 부분의 가사를 몇 번이고 입 안에서 굴려본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것 같은 나의 오늘도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날이 아닐 거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의 내일은 오늘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다. 여전히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하기 싫을 때가 훨씬 많을 거고, 저 멀리 내가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아득한 괴로움에 오늘처럼 자주 걸음을 멈추게 되겠지.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들을 지나며 단단한 뿌리를 다져나갈 나를 조금만 더 믿어보기로 한다. 어떨 때는 그저 포기하지 않고 무던히 견디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앞으로 내가 만들어나갈 의미를 떠올려보면서 그동안 멈춰있던 걸음을 떼 본다.



*이 글의 제목은 재쓰비, <너와의 모든 지금> 속 가사를 차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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