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비타>
1978년 웨스트엔드에서 첫 막을 올린 뮤지컬 <에비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며 시대를 초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에비타>는 실존 인물인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찬사와 비판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그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에바 페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에비타>의 뮤지컬 구조다. 모든 넘버가 음악으로 이어지는 성스루(Sung-through) 형식으로, 덕분에 장면마다 인물들의 감정 흐름을 끊김 없이 따라갈 수 있다. 성스루 구조의 특성상 가사가 극 전개의 핵심을 이루는데, 이를 공연 전 로비에서 QR코드를 통해 미리 숙지할 수 있도록 한 점은 관객을 배려한 세심한 장치로 느껴졌다.
뮤지컬 <에비타>의 음악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의 작품으로 이미 높은 완성도를 인정받아 왔다. 실제로 <에비타>는 공연에 앞서 음반이 먼저 발매되었고, 당시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플래티넘 히트를 기록할 정도로 음악성 면에서 먼저 검증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과 어우러지며 관객에게 더욱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배우자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부르는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이 곡은 단순한 축가를 넘어, 에바 페론이 자신과 국민, 그리고 관객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해당 넘버를 통해 관객은 에바 페론이 단지 대통령의 아내가 아니라, 본인 그 자체로 타인에게 용기와 희망을 건네는 존재가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무대 활용도 역시 인상 깊다. 다인원의 장점을 살린 시원한 군무와 조명을 활용한 화려한 무대 효과, 현대적인 감각의 안무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관객들의 시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번 무대에서는 19년 만에 에바 페론 역을 맡은 김소향 배우의 연기가 특히 돋보였다. 그녀는 2006년 초연 당시 후안의 애인 역으로 <에비타>에 참여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극을 이끄는 주인공 에바 페론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김소향 배우는 매 넘버마다 에바 페론이 느끼는 희망과 불안, 욕망과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 극의 몰입을 이끌었다.
에바 페론의 삶을 따라가며 극을 이끄는 나레이터 ‘체’ 역은 김성식 배우가 맡았다. 체는 에바 페론을 향해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인다. 그는 그녀를 우상화하려는 관객의 시선을 끊임없이 견제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면적인 존재이듯,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을 바라보며 관객은 에바 페론에 관한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게 된다.
오늘날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은 많지만, 뮤지컬 <에비타>는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당시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여성의 욕망이 어떻게 사회와 충돌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전해지는 그녀의 메시지는 에바 페론의 생애를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뮤지컬 <에비타>가 여성 관객에게 주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미디어 속 다른 여성들을 롤모델 삼아 꿈을 꾸고 그 꿈의 크기를 점차 확장해 왔다. 에바 페론은 출신과 환경의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개척자로서,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녀는 자신의 열정과 야망을 통해 이후 세대 여성들에게 ‘한계란 없다’라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준다.
관객은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더 큰 꿈을 상상하고, 더 멀리,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에바 페론은 그렇게 무대 위의 인물을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과 희망을 남긴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