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랑가 부촌 마을 체험기
동네 이름이 베들레헴이라니. 게다가 부촌이란다. 타우랑가 지역 내에 위치한 베들레헴에서 3일 동안 머물게 돼 이 동네에 대한 인상을 짧게나마 나누려고 한다. 이 지역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제공하는 크리스천 스쿨인 "베들레헴 칼리지"가 있어 교육열 높은 한국인 커뮤니티가 나름 형성되어있다. 개인적으로는 2.5년 전 타우랑가에서 열린 "에코빌리지 코하우징 워크숍"에 참여하려고 오클랜드에서 출발한 버스에서 내린 곳이 바로 베들레헴이었고, 버스정류장 근처의 커피 클럽에서 밀크셰이크와 핫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새들과 주민들의 쉼터, 리저브 Reserve
베들레헴에는 규모가 크고 뷰가 좋은 집들이 즐비하다(물론 그만큼 집값도 비싸다). 부유한 은퇴자들이나 교육열이 높은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들었다. 그래서 부촌인 것 같다. 동네가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선하다.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맞추고 Hello, Good morning 하며 서로 인사를 한다. 베들레헴 시내에는 각종 마트와 카페, 식당 및 은행 등 편의시설들이 잘 구비되어있다. 살기 좋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주거지 근처에는 동식물 보호구역인 리저브가 많다. 주로 습지 Wet land 형태로 공원처럼 산책이나 운동하기에 좋은데 특히 블랙스완에서부터 뉴질랜드 팬테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새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개 산책을 나온 노부부, 유모차를 밀면서 조깅하는 젊은 아빠,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가족 등 리저브 주변으로 벤치와 피크닉 테이블도 구비되어 있어 가족들이나 연인들도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다. 뉴질랜드 삶의 질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누구나 자연을 쉽게 편하게, 가까이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주민들 또한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며 주변 환경을 소중히 관리 유지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 중심이 아닌 에코 생태계 중심의 공존 관점에서 여기 리저브도 운영 및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예를 들어 산책 통로를 설계할 때 새들의 물속 동선을 고려해 위치, 다리 높이 및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한국 엄빠들이 선호하는 베들레헴 칼리지 Bethelehem College
타우랑가에 사는 현지 친구가 베들레헴 근처의 피트니스 센터에 가면 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베들레헴 칼리지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타우랑가 베들레헴 칼리지 입학 관련해서 여러 유학원들이 앞다퉈 유학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었고, 9월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뉴질랜드 유학 박람회에 해당 학교장들이 직접 참여해 한국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 같았다. 지난 2주 동안 참석했던 타우랑가의 어느 한인교회에서도 베들레헴 칼리지에 다니는 자녀를 둔 가족들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준사립학교 남녀공학으로 시설도 좋고, 유치원부터 총 13학년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을 운영하고 있으며 학급당 국제 학생 수를 제한하고 있다. 외국인은 꼭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하며 수업 외에도 테니스, 럭비, 골프, 서핑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의 기회도 제공한다. 캠퍼스를 가보지 않았고 수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전혀 모르겠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며 입시 준비로 경쟁 중심의 한국 교육 시스템 대비해서 한결 "인간적인 교육 시스템과 콘텐츠 및 시설"을 보유하고 있지 않나 추측해봤다. 자녀 교육 관련 정보력과 재력을 가진 한국 엄빠들이 선호하는 학교라면 나름 이유가 있겠지 싶다.
추석 만찬 @ 타우랑가 드림교회
해외에 혼자 나와있으면 우리 고유의 명절을 놓치지 쉽다. 다행히도 생츄어리 금요일 찬양 시간에 우연히 한인교회 사모를 만나 게이트파 Gate Pa에 있는 타우랑가 드림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마침 추석 맞이 점심 식사도 한다고 하셔서 베들레헴 에어비앤비 체크아웃 후에 교회로 향했다. 라이드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우버로 가면 20-23 NZD (약 19,000 원)을 내야 했다. 타우랑가 베이 버스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2023년 1월까지 정부 보조금 지원으로 시내에서는 반값인 1.7 NZD(약 1,420 원)에 이용할 수 있었다. 대신 일요일이기도 하고 버스 주행 간격이 큰 편이라 구글맵을 보며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나가야 했다. 타우랑가 시내로 갔다가 한 번 갈아타야 하는 약 40분 정도 걸리는 코스였는데 비용도 절약하고 환경도 생각해 겸사겸사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야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지불하면 쉽지만 여기는 BEE 카드 혹은 현금을 내야 하는 구조인데 BEE 카드는 은행 계좌가 있어야 되고 우편으로 주문해서 받는 형식이라 단기 거주 외국인에게 맞는 옵션은 아니었다. 버스는 1~2분 정도 늦게 왔지만 친절한 버스 운전기사분이 학생이냐고 물어보셔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잔돈과 영수증 같이 생긴 티켓을 받아 창가 좌석에 앉았다. 버스 안에는 내가 유일한 승객이었다.
뉴질랜드는 국토가 넓고 인구가 적어 대부분 가정마다 적어도 1대 이상 자차를 소유한 교통 문화가 정착되어있다. 그래서 차가 없으면 발이 묶이거나 저렴하지 않은 우버를 이용해야 한다. 시내 중심지나 큰 도시별 이동 외에는 대중교통이 커버하기가 쉽지 않아 2.5년 전 국토교통부에 근무하는 현지 친구에게 관광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교통 인프라가 왜 이 모양이냐며 투덜댄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 어떤 해변가에서 서핑을 배우고 싶었는데 차가 없으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뉴질랜드 총리라 해도 대중교통 인프라 확장 프로젝트는 장기적인 ESG 관점에서 신중하게 전략적,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버스는 나를 타우랑가 시내로 데려다주었다. 하지만 시내 메인도로가 한창 공사 중이라 버스 정류장을 다 막아버려서 교회까지 40분가량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운동하는 샘치고 열심히 걷다 보니 임시 버스정류장을 발견, 두 번째 버스에 승차해 예배 시작 전에 교회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다들 따뜻이 환영해주시고 한국어로 찬양도 하고 설교 말씀도 들으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예배 후 추석 명절 점심은 불고기와 뭇국, 잡채, 각종 전과 꼬치, 짜장 떡볶이, 샐러드, 나물, 송편과 인절미, 찰콩떡 등 말 그대로 잔칫상이었다. 오랜만에 뉴질랜드에서 맛보는 가정식을 한국분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며 먹을 수 있어 추석 명절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일본인 성도는 타우랑가에는 한국 교회, 중국 교회는 있는데 일본 교회가 없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예전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근무할 때도 교회와 성경공부 모임을 중심으로 교포와 주재원, 유학생으로 구성된 한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는데 꼭 믿음이 있지 않더라도 외롭지 않게 서로 도울 수 있는 이런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신적으로 크게 안전감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커뮤니티도 사람이 모인 곳인지라 상처받지 않도록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