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리조트 크라비 Vs. 두싯 타니 리조트
크라비는 외국인 시니어들과 가족들이 찾는 유명한 휴양지였다. 젊은 암벽 등반가들이 찾는 곳인 줄 알았는데 막상 Mueang Krabi 비치의 한적하고 럭셔리한 리조트에 머물러보니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 등 다국적 시니어들의 따뜻한 남쪽나라 휴가지였다. 야외 수영장과 해변가 근처의 비치 체어를 아침부터 일찌감치 차지하고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거나 선탠을 하거나 그냥 멍 때리거나 책/폰을 보면서 쉬는 풍경이 내게는 신기하게 다가왔다. 이들에겐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아마도 내 주변의 우리나라 시니어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어서 그런가? 이곳 리조트에서 이들이 추구하는 여유로움과 느림의 삶을 나도 체험해 보기로 했다. 프라이빗 비치를 품은 리조트에서 나도 이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우면서 멍 때리는 연습을 시도했다. 느긋하게 천천히 조식 뷔페 즐기기, 아웃도어 수영장에서 둥둥 떠있기, 해변가를 따라 산책하기,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선셋 감상하기 등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이었다.
물론 2주 동안 세상과 완전히 언플러그드, 단절한 것은 아니었다. 난 아직 은퇴를 하지 않은 (아직 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메일 체크와 업무 팔로업 등을 신속하게 진행했다. 이런 파라다이스에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짧은 순간 몰입해서 업무에 집중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더 꿀맛 같은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론 때로는 심심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리조트를 나와 가까운 슈퍼에서 장보기를 하거나 주변 지역을 탐방했다. 무엇보다 노점상에서 구매한 노랗게 잘 익은 망고는 방콕보다 더 신선하면서도 달콤하고 튼실한 크기에 가격마저 저렴했다. 나이프와 포크를 리조트 식당에서 빌려와 룸에서 1일 1 망고를 했다. 내 룸에는 조식이 포함되어 느지막하게 내려가서 아점처럼 배를 채웠다. 뷔페식인데 (늘)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 주장하고 있던 터라 가능하면 밀가루를 배제하고 칼로리 낮은 건강에 좋은 샐러드 중심으로 먹다 보니 오후가 되면 금방 배가 꺼졌다. 리조트 내의 식사 가격이 아주 많이 높은데 반해 퀄리티가 별로 좋지 않아 실망스러워 컵라면, 갑자칲, 요구르트, 초콜릿 같은 정크 스낵을 가까운 편의점에서 구입해 배를 채우거나 리조트 밖으로 나가 구글맵 리뷰를 고려해 주변 현지 식당을 이용했다. 방콕에서 자주 사 먹던 달달한 커피를 파는 카페가 없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크라비에 머물면서 나는 비욘드 리조트 크라비와 두싯 타니 크라비 리조트 두 곳에 머물렀다. 둘 다 현지 친구가 추천한 곳이었다. 둘 중에 하나를 추천하라면 망설임 없이 비욘드 리조트 크라비. 개인 취향이긴 한데 가격이 좀 더 저렴하고 조용하고 군더더기 없이 심플했다. 나름 오션뷰로 방을 업그레이드받았고, 인구밀도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허나 음식은 솔직히 별로였다. 첫날 점심으로 솜땀을 시켰는데 반이상 남길 정도였으니. 리조트 주변의 전문 레스토랑을 이용하길 권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프라이빗 비치가 더 깨끗하고 외부 여행사가 운영하는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해변가 락 클라이밍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싶었는데 비가 많이 오기도 했고 카타르 월드컵 문자중계도 지켜보느라 피곤해서 미뤘더니 두싯 타니 크라비 리조트에서는 관련 프로그램 예약 자체를 받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들은 가격도 비싸 망설여질 정도였다. 만약 내가 크라비를 다시 간다면 그건 비치 락 클라이밍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General manager가 아주 친절하셨다. 내가 혼자 와서 지내는 것을 보고 매번 아침식사 때 말도 걸어주시고 리조트 투어도 시켜주셨다. 역시 Hospitality의 세계란 서비스 마인드셋과 친절한 태도가 자연스럽게 배어있어야 하는 구나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다. 두싯 타니 크라비 리조트는 좀 더 럭셔리하고 객실 수도 더 많아 어딜 가나 숙박객으로 붐볐다. 한국인들도 여럿 보았다. 신혼부부가 오면 좋을 법한 탁 트인 초록초록 트로피칼 정원과 생물 다양성이 느껴지는 나비와 새들, 꽃과 나무가 풍성한 가든뷰가 뛰어났다. 메뉴 옵션이 더 풍성한 조식 뷔페와 바, 레스토랑 (전반 음식 수준은 보통), 사운드 명상, 비치 요가, 아쿠아로빅 등 리조트 내에서 진행하는 무료 프로그램과 피트니스 센터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게스트를 환영하는 무료 칵테일 타임도 있었고 스태프들도 친절했다. 스파 서비스 질도 가격에 맞춰 높은 편이다. 주말에 다른 곳에 지내다 다시 컴백하니 웰컴백 기프트로 손글씨 카드와 형형색색 젤리 한 병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가족끼리 리조트 안에서만 지내도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뭔가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특히 아침 조식은 야외 테이브 경쟁이 치열함) 좋은 위치에 있는 룸으로 지정해 주었으나 숙소 건물이 전반적으로 널찍한 정원과 풀장이 사이에 있어서 오션뷰라고 했지만 테라스에서 정작 바다가 저 멀리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돌아보니 시니어들의 은퇴라이프를 따라 하기에 크라비에서의 2주는 좀 길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몸과 마음을 백지상태로 만드는 기분이 들어서 좋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있다 보니 이래저래 무료했다. 그 무료함을 채워주기에는 여기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이 부족했다. 주변 섬 투어는 그냥 비슷비슷한 느낌이 들었고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그런 섬의 뻔한 풍경이라 큰 감동은 없었다. 사운드 명상, 캔들 명상, 아쿠아로빅, 러닝, 태극권 등 다양한 액티비티에 적극적으로 참여도 해보고 비키니 입고 수영도 하고 세일링도 인생 처음 배워봤으며 타이 마사지도 받고 얼굴이 익숙해져서 매일 인사도 하는 스태프들도 하나둘 늘어났지만 뭔가 익사이팅한 재미가 없었다. 여기에서 만난 수많은 시니어들을 보면서 앞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다면 소중한 24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잘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아침부터 조용히 수영장 썬베드에 널브러져 있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지만 내 성향상 그럴 수는 없을 테고 환경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뭔가 의미 있고 보람찬 액티비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코빌리지 커뮤니티? 남들은 은퇴하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당신의 은퇴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