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툴 뚜껑을 뒤집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둘까요?

by 킨스데이

여러분은 단 하나의 ‘나만의 인생 스툴‘을 만든다면 어떤 스툴을 만들고 싶은가요? 저에게는 하이 스툴과 얽힌 그다지 썩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데요.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열린 모 기업의 행사에서 패널 연사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준비된 하이 스툴에 앉았더니 다리가 대롱대롱 바닥에 닿지 않으면서 바지 자크 부분이 벌어지지 않도록 임시로 끼워두었던 옷핀이 벌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어색하게 걸터않은 자세로 관객들과 1시간 동안 마주했던 씁쓸하면서도 아찔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심플하지만 유니크한 디자인에 현재 작업대에서 작업하다 잠깐 앉아서 땀을 식히며 쉴 수도 있는 실용적인 스툴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디자인과 실용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리서치를 하고 다양하게 스케치를 그려보았습니다. 마음에 꽂혔던 레퍼런스는 20세기 대표 건축가 중의 하나인 르 꼬르뷔지에의 제자이자 여성 목수인 "샬롯 페리앙"의 스툴이었어요. 우선 이 분의 작품을 오마주 하면서 제 앉은키 높이와 작업대 높이를 고려한 1:1 도면을 손으로 그렸습니다. 다리 각도의 비율을 찾으면서 전체적인 디자인 밸런스와 수치를 뽑기 위함이었지요. 그래서 고심 끝에 아래 이미지와 같이 상판 지름 320 mm 높이 540 mm 두께 25 mm 그리고 십자형 보강대로 네 개의 다리 짜임을 넣는 스툴 (오렌지색)을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초반에 작업한 스툴 도면(오렌지색)과 수정된 도면(하늘색)의 모습 © 2023 킨스데이


하지만 곧바로 돌발변수가 생겼습니다. 스툴을 만들기 위해 제가 받은 목재는 비치(너도밤나무)였는데 사이즈가 대략 가로 200 mmx 세로 1,800 mm x 폭 30 mm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무다리처럼 불룩하게 나온 다리 각도 때문에 받은 목재 안에서는 60 mm x 540 mm x 25 mm인 다리 4개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끄러미 목재를 쳐다보면서 고민에 빠져있었더니 선생님께서 도면에다 기름종이를 대고 그린 뒤 오려서 목재에다 대보면서 가장 적합한 다리 각도를 찾아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보니 상판과 위아래 보강대 2개씩 4개를 제외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다리 사이즈는 위의 하늘색 이미지처럼 결국 높이를 540 mm에서 400 mm로 대폭 줄여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 았습니다. 그래서 앉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장식용 스툴로 용도가 바뀌게 됐습니다. 도면은 계속 수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있었고 이렇게 결정하고 난 후 바로 목재 재단을 시작했습니다. 각도절단기로 상판, 보강대, 다리 길이만큼 여유 있게 잘라주고 수압대패와 자동대패로 직각 및 위아래 면을 정돈했습니다. 이후 테이블쏘로 필요한 사이즈의 개수만큼 나무 물결무늬 방향을 고려해 켰습니다.


다리의 짜임과 이음을 위해 장부를 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요. 다리 각도가 일자가 아닌 83도 정도 기울어져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능한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어서 더 그렇게 체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디자인 측면과 난이도 조절 차원에서 십자 크로스 형태로 보강대를 넣기로 했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드릴프레스를 이용해 다리에 구멍을 뚫은 후 끌로 다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드릴 프레스를 처음 다뤄서인지 높이 조절에 실패해서 다리 한 개에 구멍이 뻥 뚫리고 마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일까요? 하지만 마음을 부여잡고 해결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저에게 해결방법이란 경험 많은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죠.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수압대패로 얇게 켠 뒤에 나무를 덧대는 수술(!)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목공 작업은 목재를 다룰 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쪽같이?) 문제해결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리와 보강대를 완성시켰습니다.


원뿔형 스툴의 모습.jpg 도면대로 원뿔형 상판을 다리 위에 얹어 본모습 (가운데 못자국이 보임) © 2023 킨스데이


이제는 스툴에서 앉는 부분에 해당되는 상판 작업을 할 차례입니다. 우선 러프하게 밴드쏘로 둥그렇게 잘라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멋모르고 정교하게 원형을 그리려고 힘을 주다 밴드쏘의 톱날이 톡 끊어져버렸습니다. 목공 경험자인 동료가 저를 보더니 네모난 나무의 모서리를 미리 각도절단기로 쳐준 다음에 밴드쏘 작업을 하면 밴드쏘 톱날에 무리가 덜 간다는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러프하게 원형을 만든 뒤에 트리머를 이용해서 나무를 고정한 뒤에 정교하게 재단을 했습니다. 동영상도 미리 보고 마이스터의 시연을 봤던 터라 이 부분은 큰 어려움 없이 쉽게 해냈습니다. 다만 트리머에 압력이 가해져서 그런지 나무가 시커멓게 좀 타더라고요. 저는 스툴 상판이 일직선이 아닌 원뿔형 모양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선생님과 상의 끝에 슬라이드쏘를 이용해서 톱날을 45도 각도로 맞춘 뒤에 상판을 조금씩 돌려가며 모양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 번에 된 것은 아니고 조금씩 돌려 깎아내는 작업이라 에너지와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꼭 날카롭게 45도를 유지하는 것보다 테두리를 살짝 유지해서 부드럽게 마무리하면 좋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슬라이드쏘 작업을 하다 보니 급 체력저하가 와서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 있긴 했었거든요. 이후에 손대패로 나뭇결 방향에 맞춰 다듬고 밴드샌더로 골고루 갈아준 뒤에 나무가 탄 부분은 스크래퍼로 긁어내어 마무리했습니다.

그런 뒤에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원래 도면의 디자인은 원뿔형이었는데 못을 박아서 트리머로 고정해 원형을 따는 과정에서 못자국이 생겼고 이 자국이 안 보이게 하려면 도면과 달리 뒤집어서 가릴지 아니면 못자국 자리에 나비장을 해서 도면대로 원뿔형으로 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스툴 다리에 구멍이 나서 수술을 했고, 상판도 45도 각도로 깎는 작업을 해서 심신이 지쳤던 저로서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못자국을 숨기는 방향, 즉 스툴 뚜껑을 뒤집는 좀 더 작업이 쉬운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45도 비트가 있으면 원뿔형 작업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지요. 사포질은 400방까지, 데니쉬 오일 마감은 2회 작업으로 마침내 아담한 사이즈의 장식용 스툴을 완성했습니다.


스툴.jpg "My first journey for the second life"란 제목의 완성된 스툴 © 2023 킨스데이


한 달이 조금 넘게 스툴을 만들었는데요. 돌아보면 잘한 점과 개선할 점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스케치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나무를 재단하는 과정에서 차별화된 디자인을 추구한 점은 잘했으나 제공된 목재 사이즈에 맞춰 도면과 다르게 디자인이 수정되면서 시간이 좀 더 소요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저 다리의 각도로 인해서 스툴 높이가 조정되었는데 상판의 지름은 그대로여서 널찍하니 물건을 올려놓기에 안정감을 주긴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리와 상판의 황금 비율을 찾았으면 더 보기에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툴은 눈높이도 중요하지만 아래 내려놓고도 바라보는 각도에서의 디자인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 각도를 더 크게 해주지 않으면 지금의 다리 디자인이 눈에 확 띄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다리에 구멍이 나서 덧붙인 부분은 선명한 물결무늬로 다리에 포인트가 되는 예상치 못한 선물도 받게 됐지만요. 이번 스툴 제작 과정을 통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신중하지만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회복탄력성과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스툴을 만들면서 그 역량은 순전히 마케팅을 하면서, 사회혁신 및 창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기획과 운영을 하는데에 한정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목공은 '끊임없는 배움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와 마주하면서 경쟁과 싸움, 갈등이 아닌 가장 최선의 의사결정과 협업하는 과정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좌절,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의 스펙트럼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커다란 선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스툴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움 주신 마이스터와 선생님, 동료들에게 감사드리며 저의 스툴 제작 여정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다음에는 액자 & 스툴 품평회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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