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평회의 격을 높이다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

by 킨스데이

제가 다니는 목공 아카데미에는 전통이 있습니다. 작품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그 마침표를 찍는 차원에서 품평회를 하는 것이었죠. 자기가 만든 작품을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소개하는 아주 소소한 내부 행사였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뉴질랜드 이주를 준비하게 되면서 어떤 스킬을 습득하고 가면 정착하는데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목공을 시작하게 된 만큼 18년간 쌓아온 경력과 완전 다른 신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저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건축가인 파트너가 예전에 비즈니스를 위해 공방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던 점도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데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작용 했습니다. 목수는 장비발도 있다고 들었거든요(웃음). 작년에 그 공방을 둘러볼 때는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로 아무 감흥 없이 담담했었는데 뭔가 나만의 공간을 만들 때, 궁극적으로 제 꿈인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만들 때 이 스킬이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전 글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부지런히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지금의 유니크 마이스터 목공 아카데미에 가구제작 산업기능사 과정형에 등록해 국비지원을 받게 된 것이지요.


액자 최종.jpg AI가 그린 에코빌리지 커뮤니티 이미지를 담은 체리나무로 만든 액자 © 2023 킨스데이


5월 11일. 품평회 날짜가 공지되자마자 이 행사를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축하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코치님에게 코칭을 두 번 이상 받으면서 액자에 들어갈 이미지와 복장, 전시 콘셉트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탐색했습니다. 우선 액자와 스툴의 작품명을 고민했습니다. 어떤 스토리로 풀어나가면 좋을까? 저의 마케팅 경력이 반짝반짝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통한 브랜딩에 집중하려고 보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이스터와 선생님들, 펠로우 선배님들, 동료들에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시작 부분에 최근에 읽고 공감했던 김미경 님의 <마흔 수업>이란 책 내용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100세 인생에서 20세까지는 유년기, 20대~40대는 첫 번째 라이프, 50대에서 70대는 두 번째 라이프, 80대부터 은퇴로 생애주기를 새롭게 구분하게 되면서 두 번째 라이프를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목공이란 정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배경과 액자와 스툴을 만든 과정에서의 좌절과 어려움, 엄청나게 헤매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순간, 이럴 때마다 어디선가 늘 달려와서 도와주는 동기들에 대한 감사까지. 스크립트를 작성해 보니 5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준비한 메시지가 청중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지요. 발표는 준비된 자의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작품명은 <My first journey for the second life, 두 번째 라이프를 위한 나의 첫 번째 여정>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콘셉트는 도슨트가 전시 작품을 설명해 주는 형태를 취하면서 예전에 관람한 메종 마르지엘라 전시회의 퍼포먼스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검은 고무가 입혀진 작업대 위를 하얀 침대 시트로 커버해서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위에 액자와 스툴을 올려둔 뒤에 러쉬의 낫랩을 씌워둔 다음 발표할 때 차례로 낫랩을 열어젖히는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습니다. 도슨트 느낌을 주기 위해 복장은 블랙 앤 화이트 재킷과 블랙 상하의, 포인트를 주기 위한 오렌지빛 구두, 그리고 하얀 장갑을 끼기로 했습니다. 가능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모든 재료는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철칙하에 준비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작품 제목은 전시회 작품 설명과 동일한 형식으로 큼직하게 (노안들이 많으셔서) 제목과 재료, 연도 등을 쓰고 A4 용지에 프린트해 테이프로 침대시트에 고정시켰습니다.


액자에 들어갈 이미지 선정에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발표할 스토리의 흐름상 제가 뉴질랜드에서 구축하고 싶은 에코빌리지 커뮤니티의 모습을 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고두고 액자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리마인더를 해주자는 목적이 컸죠. 그래서 미드저니란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10번 이상 시도해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가장 근접한 이미지를 컬러 프린트로 출력해서 액자에 끼워 넣습니다. 체리 나무로 만들고 600방 샌딩과 3회에 걸친 오일마감을 한 액자와 여러 사람들이 초록초록하게 밝게 야외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잠들기 전까지 그리고 다음 날 지하철 안에서도 스크립트를 주절주절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이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제 자신에게 뜨거운 응원과 격려, 축하를 제대로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나머지 4개월을 버티면서 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죠. 하루 왕복 2시간의 출퇴근, 그리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풀타임 학습 및 실습. 2개월 동안 지각, 결석 없이 출석 100%를 기록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나치다 싶을 만큼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해보았습니다.


품평회.jpg 낫랩으로 덮어놓은 액자와 스툴 디스플레이 © 2023 킨스데이



드디어 품평회 당일. 제 작업대를 본 분들이 "다들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라는 반응을 보이시면서 놀라워하셨습니다. 유니크 마이스터 아카데미 역사상 저처럼 품평회를 준비한 사람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준비한 메시지와 퍼포먼스를 신선하고 진지하게 잘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요. 그 결과, 원래 1등 한 명에게만 상을 주기로 했는데 2등상을 급조하셔서 제가 수상을 하게 됐습니다. 선물은 가장 비싼 목재인 월넛 한 덩이! 완전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애초에 수상이 목표가 아니었고 나를 축하해 주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준비를 한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 완전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물론 포기하지 말고 더 잘하라는 격려와 응원 차원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품평회를 준비한 열정과 시간, 노력을 인정해 주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선생님께서 제가 끼고 있던 하얀 장갑을 보고 완전 빵 터지셨다고...... 하지만 나름 이런 세심한 준비로 품평회의 품격을 높이고 프레젠테이션의 예시를 보여드린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그래서 동네방네 자랑했지요. 그리고 동기들과 펠로우 선배님들에게 제 존재를 좀 더 각인시켜 드렸던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작업대에 잠깐 들러 말도 걸어주시고 제 작업에 대해 질문도 하시더라고요(웃음). 선물로 받은 월넛은 보관대에 잘 올려두었습니다. 본 과정을 수료하기 전에 무언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품평회를 통해 저도 동료들이 만든 작품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 작업을 한 사람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제 새로운 도전에 잊지 못할 축하를 받은 멋진 날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품평회는 캐비닛인데 벌써부터 어떤 스토리로 어떻게 차별화되게 준비를 할까 생각하게 되네요. 이제는 스토리텔링과 퍼포먼스 외에도 품평회의 본질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실력만큼 목공 실력도 팍팍 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요. 뜻밖의 수상으로 인해 설레고 기쁨이 충만했던 그런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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