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뉴질랜드 남섬 최단에 있어 만년설과 바다가 있는 리버튼(Riverton)이란 작은 마을로 이동합니다. 이곳에는 30년 간 작은 숲 정원을 직접 조성한 노부부가 살고 있는데요. 1991년 초등학교 교사로 남편이 발령을 받으면서 이곳으로 처음 이사 왔다고 해요. 풀만 무성한 곳에 첫 집은 직접 짓고 두 번째 집은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아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집이 꽤 멀쩡하고(!) 세련된 클래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이후 부부는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는데요. 사과와 복숭아, 무화과, 호두, 포도를 포함해서 온갖 종류의 과실나무와 호박, 토마토, 시금치, 콩, 치커리, 버섯 등으로 풍성하게 자급자족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26년간 리버튼 시내에서 친환경 매장을 운영하면서 저렴하면서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합니다. 3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아 주변에 배달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편은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뉴질랜드 가드너”란 잡지에 12년째 칼럼을 기고해 숲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숲 속에서 고립되고 단절된 삶이 아니라 이렇게 지역 사회와 교류하고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주말이면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가 놀러 와 자연 속에서 힐링 타임을 함께 갖는데요. 부부가 이 숲 정원 집을 만든 가장 큰 목적을 잘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크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현한 거죠. 제가 경험한 뉴질랜드는 서울 같은 메가도시급 대도시는 존재하지 않고 오클랜드, 웰링턴, 크라이스트 처치 같은 도시 외에는 다들 소도시와 타운이라 조금만 운전하면 바로 산, 바다, 평원과 같은 자연이 나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연 속에 살고 싶어 하는 갈망이 유난히 크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호박과 버섯을 수확하는 일을 손주들과 함께 하면서 노부부는 행복을 느낍니다. 두 분의 인상이 참 선해서 자연 속에 살면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행복으로 얼굴 표정마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 내부로 들어가면 주방이 특히 눈에 띄는데요.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주방기구들을 찬장 없이 일부러 천장 위에 매달아 진열한 방식은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집 안의 가구들도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적절히 잘 조화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집에 대한 스토리가 더 다양하고 풍성해지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집에도 역시나 창문이 많은데요.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햇살과 초록빛 풍경이 마치 모네의 풍경화처럼 느껴집니다.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지요. 베란다 통유리 창 밖으로 건너편 아파트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이 부부가 심히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런 정원 뷰를 감상하며 식탁에 앉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면 업무 생산성도 높아지고 심지어 야근도 할 수 있겠다 싶네요.
숲 속 나무 사이에 걸어둔 해먹에서 낮잠을 자는 꿀 같은 충전 타임은 여기 정글 집에서 가능합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나무와 정원을 가꾼 것이 아니라 새와 곤충, 나무와 꽃, 물고기. 흙, 공기 등 숲 생태계를 조성해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를 조성한 모습이 정말 신기하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이 정글 같은 숲을 조성할 때 과실나무뿐 아니라 뉴질랜드 토종 나무들도 함께 심었는데 그 나무뿌리에 특정 균이 있어 숲 생태계가 잘 자라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나무 그늘이 많아지지 않도록 가지치기를 해주는 등 사랑과 정성으로 숲을 가꿉니다.
이미 숲이 존재해서 거기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에 30년간 숲을 만들어온 부부에게 그 용기와 인내에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산불, 홍수, 산사태, 경작 등 인재(人災)로 인해 점점 숲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는 지구의 상황에서 집 주변을 숲으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 사례를 보면서 제 생각의 폭이 훨씬 더 확장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모두가 힘들 것이라고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과 먼 미래를 생각라면서 뚝심 있게 밀어붙인 두 부부의 결단력과 추진력, 실행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숲은 남아있을 것”이라는 부부의 메시지가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가져오네요.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에코빌리지 커뮤니티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이 사례를 공유하면서 어떻게 반영하면 좋을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