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 앤 센스빌리티>나 <제인 에어> 같은 영국 시대극을 보면 바람 부는 초록빛 언덕을 볼 수 있는데요. 영국 오콥 힐(Orcop Hill)에는 10년에 걸쳐 부부가 네 자녀들과 함께 직접 지은 아주 개성 있는 집이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호빗이 사는 집 같다고 했지만 호빗은 뉴질랜드에 살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네요.
건축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창의적으로 지은 집을 보면 저는 설레고 흥분됩니다. 어쩌면 건축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집을 지을 용기와 끈기,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래서 오늘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부부는 2000년에 지금의 장소를 발견하고 2005년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요. 이전에 남편은 오래되고 거대한 성을 복원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남들은 버릴법한 오래된 재료를 가지고 손으로 뚝딱뚝딱 만드는 일을 좋아합니다. 특히 집이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시해서 집 형태를 먼저 갖춘 후에 내부 구성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집에 사용한 나무는 주변 숲에서 구하거나 재활용 자재를 이용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대성당처럼 6m에 달하는 높은 천장과 나무를 격자구조로 이어 연결한 구성에 입을 쩍 벌리게 됩니다. 전면의 통유리 창을 통해 영국의 시골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집의 형태에 비해 가구들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소박해서 제 눈에는 안락함보다는 오히려 썰렁함과 초라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부부가 상상한 대로 집을 지었다고 했는데 외형은 과하다? 싶기도 하고 실내는 그만큼 공간을 누리지 못하는 느낌도 들어 아쉬웠습니다. 그저 개인 의견입니다.
이 집은 아직 미완성인데요. 그렇다고 딱히 완성을 목표로 하지도 않습니다. 사부작사부작 자기들의 속도에 맞춰 집을 지으면서 그 과정에서 얻는 작은 성취감을 즐기는, 가족과 함께 진화하는 집인 셈이죠. 아내는 이 과정을 여정(Journey)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네버엔딩 집 짓는 여정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 여유와 만족이 느껴졌습니다.
자급자족 측면에서 기르는 염소가 산양유를, 양들이 양털을, 닭들이 달걀을 제공해주고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인간의 착취가 아니라 필요한 양만큼만 얻고 그만큼 사랑과 애정으로 돌봐주는 상부상조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더 이상 달걀을 생산하지 못하는 늙은 암탉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모이를 축내기 때문에 이미 제거를 하겠지만 여기서는 다른 닭들과 함께 키웁니다. 지난 3~4년 동안 달걀을 제공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지요. 텃밭도 가꿔 감자와 양파, 상추, 허브 등 다양한 채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네 자녀는 이제 성인이 되어 도시에서 교육을 받고 일을 하거나 목수가 돼 부모의 뒤를 잇기도 합니다. 가족이 둘러앉아 밭에서 얻은 식재료로 만든 감자 오믈렛에 상추를 곁들여 식사하는 모습이 유기농, 친환경 라이프를 추구하는 일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도시에 있지만 자기 가족이 생기면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자녀를 보면서 부모가 심어놓은 숲 DNA의 임팩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처에 2년 동안 지은 게스트 하우스는 남편의 창의력과 위트로 가득 차 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머물고 싶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에어비앤비에서 찾아보니 1박에 292,857 원으로 조금 비싸게 나오네요. 경험을 생각하면 그 값어치가 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에어비앤비 게스트하우스 링크:
영국 특유의 회색빛 하늘과 안개 낀 날씨에 천천히 주변을 산책하는 부부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소리와 침묵의 소리를 즐기면서 누군가의 속도에 채여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내 속도에 맞춘 슬로 라이프. 에너지와 식재료를 자급자족하고 (여기에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 되지 않을까 그려봅니다. 이를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디에서 시작하면 될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내 미래를 위한"숲이 있는 땅"을 소유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3줄 요약>
- 10년 넘게 집을 짓는 여정을 즐기는 부부와 네 자녀
- 자급자족에 기여하는 동물들과 상부상조하며 슬로 라이프에 만족
- 생활비를 벌기 위해 2년 동안 직접 지은 게스트 하우스 운영
*숲이 그린 집 영국 오콥 힐 편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