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우면서 먼 나라인 일본 나가노현 북 알프스의 산기슭에는 숲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한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1970년대 도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해 고향 숲으로 돌아온 부부는 매일 아침 명상을 통해 자연이 주는 공기와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에는 이 부부의 삶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포인트가 있었는데요. 첫째, 200여 종이 넘는 토종 종자 저장 창고를 만들어 별도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농사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토종 종자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는 이웃에게도 무료로 제공하려는 부부의 관대함에도 감동을 느꼈습니다.
둘째, 자연 농법으로 땅을 갈지도 잡초를 뽑지도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땅을 엎지 않고 흙을 살짝 긁어서 옆으로 밀어 심으면 잡초랑 싸우지 않고 작물을 키울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퍼마컬처에 관심이 많은데요. 숲과 텃밭의 경계가 없고 사람 중심이 아닌 과일과 채소, 꽃. 나무 등 자연 섭리 중심의 농법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수확하는데만 집중하는 이기심이 아닌 진심으로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서 공존과 상생을 실천하고 그 안에서 얻는 먹거리에 감사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곰도 사는 숲을 떠나지 않고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부부의 환경 순응력과 용기 그리고 겸손함에 절로 감탄이 나오네요.
셋째, 숲학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놀고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경쟁과 속도가 아닌 자연에 대한 감사와 그 이치를 따르는 생활, 자연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는데요. 뉴질랜드의 얼스송 에코 빌리지 커뮤니티에서도 지속가능성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조건으로 지역 시의회에서 투자를 받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다음 세대를 위한 자연 교육 제공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숲이 준 재료로 직접 지은 부부의 집 내부에는 정말 필요한 가구와 물건만이 정갈하고 소박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채우는 것이 아닌 덜어내고자 하는 일본인 특유의 미니멀리즘이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얼마 전 밤마다 실을 잣는 취미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연히 시간도 품도 많이 드는 고된 작업이지만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숲 속에서 살다 보니 시간도 많을 뿐 아니라 서둘러 실을 뽑아 옷 지을 이유도 없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풍요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부의 일상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가축을 키우지 않아 자연스럽게 채식을 하고 삼시 세끼 메뉴는 숲이 정해주는 데로 제철에 맞게 재료의 신선함을 최대한 살려 간단히 조리합니다. 간장, 된장, 케첩, 마요네즈 등 직접 만든 다는 아내는 자연이 주는 신선한 식재료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데 집중합니다. 그 덕분인지 부부는 지금까지 병원 갈 일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중에 에코 빌리지에 살면 달걀을 얻기 위해 닭들을 길러야 하나 고민했었는데요. 이 부부를 보면서 꼭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부부는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를 사용하고 쌀농사도 기계 없이 손으로 지으면서 1년 치 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싸게, 빠르게 효율성과 생산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사는 삶, 자신들이 떠나도 이들이 머문 자리는 자연으로 회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부부의 모습을 저도 닮고 싶더라고요. 쌀 한 톨을 심으면 3천 배로 불려주는 자연에 감사하면서 그 감사를 나눔으로 실천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제가 뉴질랜드에서 바라는 삶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주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 중심이 아닌 자연 생태계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 일부로 잠깐 살다가 수 있느냐인데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비워내는 연습과 감사하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랫동안 대도시에서 물질주의에 점철된 삶을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라도 가능한 선에서 소비를 줄이고 옷, 신발, 책 등 불필요한 물건부터 주변에 나눠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연 속에서 거주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반드시 깊은 산속에서만 무소유의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서울에서도 비슷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같이 실천한다면 비우는 삶 + 환경친화적인 삶에 대한 일상화, 습관화, 내재화를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도전, 저랑 같이 하실래요?
<3줄 요약>
- 200여 종의 토종 종자를 보유 및 관리
- 숲과 밭의 경계가 없는 자연 농법을 바탕으로 '비우는 삶, ' '감사하는 삶' 추구
- 숲학교 운영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연 놀이터'의 경험 제공
*숲이 그린 집 일본 나가노 편 유튜브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