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C 기계로 작업할 두 번째 작품은 '소반'입니다. 큰 CNC 기계를 이용해 600 mm X 1200 mm, 15T 사이즈의 라왕 합판으로 만들 예정인데요. 우리 집에서의 활용도를 생각했을 때 좌식용 소반보다는 거실 소파에 앉을 때 편리한 티테이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핀터레스트에서 티테이블 레퍼런스를 두루 찾아보았는데요. 합판 가구는 예전에 캐비닛을 만들 때 무늬목을 발라 사용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대략 어떤 느낌이 나올지 감이 오긴 했습니다. 이에 원목 느낌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집안의 가구와 적당히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찾은 레퍼런스는 아래와 같은데요. 수작업으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둥글둥글한 티테이블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레이저로 미니어처를 만들어 결구 방향과 디자인을 러프하게 잡아본 다음, 캐드에서 디자인과 사이즈를 확정했습니다. 그런 뒤 Aspire로 커팅과 포켓의 경로를 설정했습니다. 이제 기계 작업을 하면 되나 싶었는데 아뿔싸. 나무 물결무늬 방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급하게 가로였던 바디를 세로로 변경하고 커팅 여유분을 20 mm로 주었더니 제가 받은 사이즈를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1200 mm X 2400 mm 전체 합판에서 첫 번째로 오른쪽 맨 끝에다 CNC 작업하는 동료의 남은 여백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추가로 고민했던 부분은 바로 티테이블을 세웠을 때 안정감 있게 설 수 있느냐였는데요. 높이가 560 mm 정도 되었거든요.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상판 사이즈를 줄이고 십자가 바닥 부분에 따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크로스 형태로 조립하는 바디 부분에는 도그본을 줘서 딱 맞물리게끔 커팅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커팅되는 부분은 커팅이 되어도 움직이지 않고 합판에 잘 붙어 있도록 양 옆 두 개씩 탭을 설정해 두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어 기계에 USB를 꽂아 파일을 설정하고 X축과 Y축 원점을 맞춰준 후 엔드밀을 번호를 확인한 뒤에 시작 버튼을 눌렀습니다. 큰 CNC 기계의 장점은 진공으로 합판을 고정시켜 주기 때문에 클램프로 고정시켜 줄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략 1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고 별다른 문제없이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이제는 샌딩과 도장 작업 차례인데요. 역시나 색상 측면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라왕 합판 특유의 애매모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150방, 220방, 400 방 샌딩을 해준 다음 상판에 레이저로 각인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제2외국어였던 프랑스어 실력을 살려서 나의 작은 티테이블이란 의미로 ma petite table à thé를 각인하기로 했는데요. 역시나 있어 보이게 Old English Text MT 폰트를 선택했습니다.
MDF로 각인 테스트를 하고 나서 바로 실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레이저로 작업을 하면 그을림이 발생하는데 사포로 살살 닦아주니 사라지더라고요. 원래 색상을 입혀볼까 해서 우드 스테인을 찾아봤지만 라왕 합판에 어울릴 만한 색상을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정성스레 데니쉬 오일을 두 번 발라줬습니다. 오일을 바르니 허여멀건 했던 표면에 라왕 특유의 적색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더라고요. 건조 후 바니쉬 반광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지난번 캐비닛을 작업할 때는 월넛 에지를 붙였지만 이번에는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원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합판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거든요.
정성을 쏟은 만큼 결과물이 괜찮게 나온 것 같아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라왕 합판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싼 티가 나지 않고 살짝궁 고급스러움이 묻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제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요. 마이스터께서도 생각보다 잘 나왔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 티테이블은 일부러 본딩을 하지 않고 조립형 스타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이번 전체 제작 과정을 돌아보니 심플하게 디자인을 하고 레이저로 미니어처를 만들어본 다음 캐드, Aspire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CNC 기계로 작업한 뒤, 후가공을 통해 소형 가구를 뚝딱 만드는 것이 확실히 효율적이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 인건비도 적게 들어 이런 공정으로는 저가 판매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로고를 만들어서 제품에 작게라도 각인을 해줘야겠습니다. 조금씩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이런저런 결과물이 늘어갈수록 그 과정을 통해 소확성과 소확행을 느낄 수 있어 하루하루가 뿌듯하네요. 이래서 다들 목공을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어느새 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음을 새삼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