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대특 과정으로 보내는 평일 하루의 기록
오전 6시 40분. 엄마가 싸주신 주먹밥과 텀블러, 노트북이 든 묵직한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바깥은 어두컴컴하고 기온도 떨어져 어깨가 움츠려드는 아직 모두 잠들어있는 겨울의 어느 한 자락 풍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철저히 무장을 합니다.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옷차림만 있을 뿐,”이라는 스웨덴 속담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기모로 된 상의와 하의, 롱패딩에 KF94 마스크,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저 멀리 아파트 입구의 횡단보도를 녹색 신호등에 맞춰 제 때 건너기 위해 양팔을 흔들며 가볍게 달렸습니다. 가끔씩 길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막 떠나가는 340번 버스를 보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발을 동동거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오늘은 다행히 버스가 바로 왔습니다. 일단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으면 1차 목표는 달성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며 오늘 공방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할지 머릿속으로 일과를 그려보았습니다. 암사역에 하차. 버스가 열리면 무채색의 무리가 우르르 잰걸음으로 지하철 입구를 향했습니다. 저도 그 무리에 섞여 긴 머리 휘날리며 걸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해서 뛰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에도 신경을 쓰며 속도를 조절합니다. 8호선 종점에서 출발하는 모란행 열차에 승차해 앉을 수 있어야만 두 번째 목표 달성입니다. 오늘도 다행히 해냈습니다. 저는 양끝좌석에 앉는 것을 선호하지만 핑크색 임산부석은 피합니다. 아마 제 인생에 그 혜택을 누릴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양 옆에 덩치 큰 남자 승객 사이로 최대한 움츠린 자세로 이제 눈을 감고 쉬는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잠에 빠진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잠실역이나 석촌역, 가락시장역과 같은 환승역에서 썰물같이 내리고 밀물같이 타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저도 야탑역에 도착합니다. 이제 2번 출구로 나와 아이파크 아파트 정문으로 6-7분가량 걸어갑니다. 함께 목공 과정을 수강하는 언니와 7개월째 카풀을 하고 있거든요. 이삭토스트, 스타벅스, 편의점, 동네 맛집 베이커리 등 이른 아침을 깨우는 가게들을 빠르게 지나 분당 지역 특유의 가로수인 메타세쿼이아 나뭇길을 걸어 7시 43분에 도착했습니다. 어반 오렌지 컬러의 "당근이"에 올라타면 세 번째 목표까지 출근길 레이스는 오늘도 성공이었습니다.
무사히 주차를 하고 기분 좋게 잠겨있던 공방 문을 엽니다. 오늘도 우린 일등으로 도착했습니다. 전등 스위치를 켜고 QR로 입실 체크를 한 뒤 토치로 난롯불을 지피는데요. 밤새 차가워진 연통을 먼저 달궈주고 동료들이 패 놓은 장작과 나뭇가지들을 삼각뿔처럼 양옆으로 쌓아줘 불길을 내주는 것. 동료들에게 처음 배운 그대로 이제는 저도 난롯불도 척척 피워낼 수 있는 여자랍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 동료들이 하나둘 도착합니다. 따뜻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난로에 불을 피우고 음악을 트는 것. 카풀 언니와 제가 동료들을 위해 준비하는 작은 아침 선물이지요. 아직 힘이 부족해 도끼로 장작 패기는 할 줄 모르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작업도 배워보고 싶습니다.
저희 공방에는 '렉슨'이라는 대형 CNC와 '엑시움'이라는 작은 CNC 두 대가 있습니다. 4개월의 수강 기간 동안 렉슨은 딱 두 번 써봤는데요. 아직 혼자 사용할 수는 없는 수준이고 담당하는 선생님이 함께 해주셔야 작업이 가능합니다. 주로 2440 mm X 1220 mm 사이즈의 원장 합판 작업을 하는 용도로 쓰이는 편입니다. 진공 기능이 있어 따로 클램프 작업을 안 해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확실하게 고정이 안되면 가끔 선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엑시움은 이제 혼자서도 어느 정도 익숙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수준인데요. 퓨전 360 프로그램을 통해 3D 모델링을 한 뒤 CAM을 짠 다음 원목을 고정시켜 CNC로 작업을 합니다. 9월부터 지금까지 포켓, 커팅, 황삭, 정삭, 양면가공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최근에는 4축 가공을 배우고 있는데 이 기능은 아마도 제 평생 사용할 일이 있을까 의문이 들긴 합니다. CNC 기계는 나무로 만든 소품이나 가구의 양산을 위한 것인지라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면 한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조립과 마감, 도장과 같이 후가공만 하면 되니까요. 그렇다고 기계가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히 해결해야 합니다. 목공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반의 수강 인원은 모두 8명인데요. 원목으로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항상 소형 CNC 엑시움 사용을 위해 나름 신경전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엑시움 작업을 하면 차례를 기다리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핀터레스트에서 레퍼런스 디자인을 서칭 하거나 퓨전 360에서 모델링을 하기도 하고 CAM을 짜거나 수압대패와 자동대패를 이용해 원목 재단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8명이 한 대로 돌아가면서 사용하다 보니 자기 순서를 기다리다 지칠 때도 있지요. 특히 12월에는 자유제작 기간이라 엑시움을 이용하기 위한 눈치레이스는 더욱더 치열해질 것 같은 느낌스런 느낌이 듭니다. 다른 공방에서는 10명 넘게 수강을 한다고도 들었는데 수강생 입장에서는 기계당 4명에서 최대 6명 정도가 가장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공방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한 대당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돌려야 그나마 ROI(Return on Investment, 투지수익률)이 나오겠지만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브랜드별로 가격은 상이하지만 엑시움은 1,500만 원대입니다. 허걱.
목공 아카데미에서의 하루 일과는 9시부터 12시 반까지 오전 수업과 점심시간,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오후 수업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오전에는 주로 퓨전 360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수업이 없으면 실습이나 개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작업대는 2인 1조로 사용하고 있는데 서로 공간을 배려하며 나눠 쓰고 있습니다만 1인 1 작업대가 가장 바람직하죠. 작업대 근처에는 먼지가 많이 나기 때문에 도장 및 건조 작업은 2층 휴게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은 1시간 정도인데 주변 시설이 여의치 않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고 있는데요. 2층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때때로 근처 카페에서 리프레쉬 타임도 갖습니다. 특히 지난 무더운 여름은 이 카페의 수박주스로 오후 시간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을 느끼는 아지트 같은 곳입니다. 텀블러를 들고 가면 300원 할인도 받을 수 있어요. 동료들과 살짝 수다를 떨면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일부러 찾을 때도 있고요.
수업은 오후 5시 30분에 끝납니다. QR로 퇴실 체크를 하고 공방 문을 나서면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습니다. 12월에는 어둠 속에서 출근해 어둠 속에서 퇴근을 하니 몸과 마음이 좀 더 무거워진 느낌이 듭니다. 당근이를 타고 야탑역에 내리면 다시 퇴근길 전쟁을 시작합니다. 왕십리행 수인분당선 1-1 전철칸에 몸을 싣고 한 정거장 후 모란역에서 하차하면 그래도 8호선 종점이라 앉아서 5호선 환승이 가능한 천호역까지 갈 수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여정 또한 퇴근 러시 아워라 3월부터 지금까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경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는 않네요. 김포라인이 최악이라고 했지만 인구 밀도 높은 5호선 하남검단산행 역시 장난 아닙니다. 납작 끼여있다가 고덕역에서 인파를 뚫고 무사히 탈출하고 나서야 발걸음 가볍게 집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하루 동안 감사한 일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지쳤던 제 얼굴에 미소가 자연스레 번지더라고요.
이제 딱 10일 남았습니다. 매일이 전쟁같이 치열했지만 달력에다 하루하루 x자로 표기해 가며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배우면서 신나고 재미있을 때도 있었고 지루하고 다운될 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공방 아카데미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에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결코 낭비한 시간이 아니라고 스스로 되새깁니다. 이렇게 버텨서 산대특 과정까지 모두 마칠 예정입니다. 모든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화요일부터 금요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롯이 나만의 자유시간이 되는 그때, 더 이상 지하철 출퇴근 시간에 부대낄 필요가 없을 때, 나만의 목공 여정이 일차적으로 끝이 났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날이 올 때까지 저는 오늘도 마지막 작업에 몰두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