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C 기계, 레진, 그리고 자석 앞에선 무한 겸손을

by 킨스데이

몇 차례 CNC 가공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 사이 자만해졌었나 봅니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으니까요. 모서리에 곡선이 살아있는 보석함을 만들고 싶어서 퓨전 360으로 디자인하고 CAM을 짰습니다. 마이스터와 해당 프로그램 전문가에게 두 번이나 꼼꼼하게 리뷰도 받았거든요. 제 차례가 되어 소형 CNC 기계를 돌렸습니다. 크게 무리 없이 황삭과 정삭 기능을 이용해 몸통을 완성했습니다. 뚜껑도 공정이 동일하였기에 늘 하던 대로 목재를 클램프로 고정하고 여러 파일을 오픈해서 모서리 위치를 확인한 뒤에 CNC 기계의 스타트 버튼을 눌렀습니다. 갑자기 드르륵 하고 무언가 크게 깎여나가는 소리가 나 Stop 버튼을 눌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계가 처음 드릴링해서 목다보 구멍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인 정삭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작에 앞서 각 모서리를 확인하고 첫 번째 파일을 오픈했어야 했는데 마지막 파일을 그대로 둔 채 시작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었죠. 어흐흑 머리를 감싸 쥐고 이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했던 제 자신을 꾸짖었습니다. 뚜껑 윗부분이 이렇게 돼버려서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첫 번째 파일부터 순서대로 다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CNC 기계의 실수가 확연히 드러나는 왼쪽 몸통 © 2023 킨스데이


윗면의 황상과 정삭, 아랫 면의 황삭과 정삭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어 초반의 뼈아픈 실수가 마상(마음의 상처)으로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실수가 없었더라면 애쉬로 만든 보석함이 완성도가 높아 꽤 만족했을 것 같거든요. 덕분에 "CNC 기계 앞에 장사는 없다"라고 한없이 겸손 또 겸손해져야 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만든 보석함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작업을 마치고 한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그 사이 조금 비틀렸더라고요. 나무란...... 참...... 살아 숨 쉬는 생명체네요.


이번에 사용한 목재는 사실 애쉬 자투리를 집성해서 만든 거라 죽은 옹이구멍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옹이는 나무가 자랄 때 줄기나 나뭇가지가 목부에 파묻히는 것을 뜻하는데 목재의 결점이 되는 것 중 하나지만 이로 인해 특이한 문양이 나타나기도 하는데요(교육부, 가구재료 수립). 건조 후에 탈락되지 않은 것은 산옹이, 건조 후 탈락되는 것을 죽은 옹이라고 부릅니다. 저의 경우, 뚜껑 위와 옆 부분에 죽은 옹이구멍이 있어 이것을 레진으로 메꿔보기로 했습니다. 레진은 치과에서 치아를 때울 때 사용하지만 목공에서도 레진으로 옹이나 크랙을 메꾸기도 하고 디자인적인 요소로 컬러를 넣어 글씨를 새기기도 하며 레진아트라고 해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를 구현한 테이블이나 의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처음 사용하는 소재라 투명하게 구멍 메꾸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동료 분이 마침 레진 재료를 갖고 계셨거든요. 우선 옹이 주변을 스카치테이프로 둘러싸서 레진이 흐르지 않도록 막아준 다음, 레진과 경화제를 1:1 비율로 섞어 한없이 저어주다가 옹이 구멍을 메꿔줍니다. 생각보다 구멍이 컸는지 한없이 흘러들어 가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건조해줍니다. 겨울에는 공방이 추워서 그런지 건조하는데 일주일 이상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고요. 레진이 마르면 샌더기로 잘 갈아준다음 오일로 닦아주면 투명하게 정리됩니다.


보석함 뚜껑 안쪽에 레진으로 메꾼 옹이 구멍 © 2023 킨스데이


뚜껑과 몸통 모두 220방, 400방, 600방, 800방으로 사포질을 하면서 마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정성스럽게 오일을 발라주었죠. 원래 작은 나비경첩을 달려고 했지만 지난번 실수로 뚜껑 한쪽을 파먹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자석으로 뚜껑과 몸통을 탈부착하기로 했습니다. 4mm짜리 원형 자석을 10개 주문했고 4mm짜리 드릴로 3 mm를 뚫어서 자석을 고정시켰습니다. 제가 목공에서 자석은 처음 사용해 보는 건데요. 아쉽게도 Beginner's luck (초보자의 행운)은 없었습니다. 몸통 네 귀퉁이에 자석을 하나씩 박아 넣고 뚜껑 네 귀퉁이에도 자석을 하나씩 박으면 끝. 심플하게 들리겠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너무나도 당연하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 과학시간에 배운 자석의 N극과 S극이 만나야 꼭 붙고 N극과 N극은 상극이라 서로를 밀어낸다는 점이죠. 물론 제가 주문한 자석에는 N극과 S극이 표시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업 전에 이 부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멍을 뚫고 자석을 박기 위해 망치질을 해대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죠. 다급하게 뚜껑을 닫아보았는데 오노! 네 군데에서 한 군데가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자석은 원형이었고 이미 3mm 깊숙이 박아넣어기에 보석함에 생채기를 내지 않고는 빼낼 도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떨거덕거리면서 그냥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아 진짜...... 울고 싶더라고요.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있는 게 아닐 텐데 부족한 제 자신에 한없이 속상했습니다.


오른쪽 앞부분 모서리가 자석이 서로 밀어내어 살짝 뜬 모습 © 2023 킨스데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석함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상함을 달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저에게 항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레이저 각인기로 "항상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프랑스어로 각인하기로 했습니다. MDF로 테스트를 해본 뒤에 각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최종 결과물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나온 작품이죠. 이 작업을 통해서 배운 점은 명확합니다. CNC 기계, 레진, 자석 그 어느 하나 작업 과정에 겸손하게 집중하라는 것이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작업을 마무리한 제 자신에게 칭찬과 인정을 아낌없이 해주고 싶습니다. 목공은 결과물이 너무나도 정직하게 나온다는 큰 장점이자 단점(!)이 있는 과정의 연속인데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과정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한 자세로 장인의 마음으로 작업에 임해야겠죠. 그러다 보면 이런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성숙한 시장이 형성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듭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작품이라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그런 만큼 더 애착이 가고 배움이 있었던 "애쉬 보석상자 제작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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