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싱킹 프로세스를 통한 가구제작기
자유제작으로 어떤 가구를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데요. 내가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내 방에 들여놔도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보기에도 예쁘고 실용성이 높으면서 내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개선시켜 줄 수 있는 그것. 그러면서 제작하는데도 크게 어려움이 없고 갖고 있는 월넛 한 덩이와 애쉬 한 덩이 내에서 소화가 가능한 그것.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를 적용해 가구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1단계. 공감하기
공감하기란 그 타깃의 관점으로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을 뜻하는데요. 여기서 타깃 대상은 제 자신이었기 때문에 제 일상을 쉐도잉 하듯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는 제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침대, 책장, 책상, 수납함을 살펴보면서 제가 평소 하던 고민, 불편한 점(페인포인트)에서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기적으로 집을 청소할 때마다 엄마가 방 정리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셨거든요. 청소광 브라이언급은 아니지만 저를 제외한 가족들이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데 반해 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혼 스타일이라 필요할 때만 정리하는 습관을 고수하고 있었거든요. 한 때 일본 정리의 여왕인 곤도 마리에가 "설레게 하지 않는 것들은 버리라, " 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책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책을 좋아하고 빨리 읽는 편인데 막상 정리를 제대로 안 해서 여기저기 쌓여있었거든요. 그래서 특정 책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도 헌책방에 들려서 저렴한 가격에 클래식 원서를 사모으기도 했는데 그 득템 하는 기쁨이 쏠쏠했거든요. 드물게 가끔 책 선물도 받았고요. 주로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지만 간혹 소장 가치가 있는 책,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책들은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기도 하는 등 벽 한쪽 면을 책장이 다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간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2단계. 문제정의하기
공감하기 단계에서 저의 페인포인트 '책 보관 정리의 필요성'을 발견했는데요. 문제 정의하기 단계에서는 해당 페인포인트의 진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책이 카테고리별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도서관처럼 분야별로 잘 분류가 되어있다면 기존 서적에 더불어 앞으로 추가될 새로운 책들을 위한 적당한 공간확보가 가능할 것이고 책을 찾는데 시간을 소요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책장이 앞뒤로 두 줄로 꽂아야 할 만큼 깊이가 깊다는 것도 이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였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기존 책장을 버리고 새로운 책장을 구매하지 않는 한 당장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그래서 책을 리스트업 해서 분야별로 정리해서 보관, 관리하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원서부터 작가별, 언어별, 책 사이즈별로 제대로 보관하는 연습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단계. 아이디어 도출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원서부터 작가별, 언어별, 책 사이즈별로 제대로 보관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2단 미니 책장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방문 옆과 침대 사이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두고 요즘 관심 있는 원서들을 꽂아놓는다면 손쉽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아보기 위해 핀터레스트에서 "mini bookshelf"를 검색해 훑어보았습니다. CNC 기계로 제작할 거라 양 옆판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약간의 앤티크 느낌을 살려 곡선 처리를 넣기로 했고 책 받침대에도 곡선의 미를 넣기로 했습니다. 또한 방문이 다크한 월넛 컬러지만 책장이 밝은 색상이라 월넛과 애쉬를 섞어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기로 했는데요. 그래서 나온 스케치는 바로 아래와 같이 600 mm x 300 mm x 150 mm 아담한 사이즈로 월넛, 레드오크, 애쉬를 섞어보기로 했습니다.
4단계. 프로토타입 개발하기
스케치를 기반으로 나무 각재의 사이즈에 맞춰 퓨전 360 프로그램으로 디자인하고 CAM을 짰습니다. 받침대와 옆판을 고정시켜 주는 장부의 경우,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턱장부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욕심 같아선 황삭, 정삭 기능까지 활용해 디자인적인 요소를 극대화하고 싶었지만 소형 엑시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 포켓과 커팅만 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사랑스러운 루후바오처럼 미니 책장을 동일한 디자인에 소재만 바꿔서 두 개를 제작해보려고 해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옆판이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포켓을 해주는 면이 동일한 방향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물결무늬와 심재, 변재, 옹이 등 옆판, 받침대판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표기를 잘해서 CNC 기계에 올려놓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유난히 날씨가 올해 들어 최고로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패딩이며 담요며 커피 텀블러며 단단히 무장을 하고 소형 CNC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기계를 한 시간 전에 켜두어 웜업을 시켜주었고 미리 구매해 두었던 플랫 비트로 교체했습니다. 클램프로 첫 번째 각재를 고정시키고 원점을 포함해 비트의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의식을 치르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집중해서 CNC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완성된 각재들이 옆에 하나씩 쌓여가면서 추위가 제 몸을 휘감아 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발이 시리더라고요. 추위에 버티면서 만감이 교차되었습니다. 너무 춥다 보니 기계도 갑자기 중간에 멈추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미니 책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제 목표는 확실했고 이렇게 CNC 기계를 사용할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다시 집중해서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대형 CNC 기계는 작업을 시작하면 가끔 들여다보면 되는 반면에 소형 CNC 기계는 직접 청소기 호스를 들고 집진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추운데도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어야 했지요. CNC 기계가 작동하는 시간에 온전히 그 시간을 내 자유의지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굳이 CNC 기계를 사용할 이유가 있냐며 예전에 동료와 농담을 나눈 기억이 떠오르네요. 장장 3시간 반 동안 1차 작업을 마치고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에 한 시간 정도 추가 작업을 해서 최종 마무리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소형 CNC 기계가 있는 방 전용 히터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작업을 마친 후에야 알았는데 그 억울함과 허탈감이란. 오전 내내 냉동창고에서 작업하는 마치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 기분이었는데요. 어찌 보면 목공은 계절을 타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나무의 수축 팽창도 그렇고 사람도 작업하기 힘드니 여름과 겨울보다는 날씨가 온화한 봄과 가을에 더 적합한 작업이지 않나 싶어요. 물론 계절성을 극복할 만큼 공방의 환경이 잘 조성된다면 다르겠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미니 책장은 아래와 같은 모습입니다. 양옆판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은 아라베스크 무늬를 참고했고 책 받침대에도 자연스러운 물결 곡선으로 부드러움을 살렸습니다. 책이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보강대는 레드오크 자투리를 사용했어요. 800방까지 샌딩을 하고 본딩을 한 다음 오일을 발랐습니다. 군데군데 본드를 바른 자국이 남아있어서 스크래퍼를 이용해 제거하려고 했지만 완벽하지는 않더라고요. 앞으로 본딩을 하고 나서는 본드가 마르기 전에 꼼꼼하게 제거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디테일에서 승부가 나니까요.
5단계. 테스트하기
집에 가져온 미니책장에서 아직 오일냄새가 나서 베란다에 두고 추가 건조를 시키고 있는 중이라 아직 테스트 전인데요. 그래도 예상했던 대로 모양이 나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족도는 높은 편입니다. 오일냄새가 빠지면 바로 제 방으로 들여와 원서들을 나란히 꽂아줄 예정입니다. 일단 이번에 사용해 보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피드백을 반영해서 개선된 디자인으로 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언제 올진 저도 아직은 장담할 수가 없지만요.
이렇게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를 통해서 미니 책장을 만들어봤는데요. 저의 페인포인트를 발견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제 자신이 타깃이 되니까 문제 정의를 하고 아이디어 도출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첫 단계인 공감하기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공감 능력을 발휘해 고객의 니즈와 원츠를 파악하는 것. 목공을 하는 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서가 나란히 꽂혀있는 책장을 상상해 보면 저절로 흐뭇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 주변에 자랑도 하고 싶을 것 같아요. "그래도 추운 데서 고생했던 보람이 있구나." 수고한 제 자신을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온전히 인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