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Jan 20. 2024

쇠퇴한 금광 마을에서 매력적인 관광마을로 변신하다

역사가 숨 쉬는 작은 금광 마을 뉴질랜드_애로우타운

  퀸즈타운에서 차를 타고 동쪽으로 30분 정도 가다 보면 옛 금광 마을인 애로우타운(Arrowtown)이 나온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이곳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아담한 동네다. 퀸즈타운 주변 갈만한 곳을 서칭 하다가 애로우타운이 뜨길래 방문해 보기로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1860년대 애로우 리버에서 금맥이 발견된 이후 중국에서 광부들이 몰려오는 등 골드러시의 살아있는 민속촌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라고 한다. 박물관은 입장료가 있어 그냥 패스하고 애로우 리버를 따라 산책로를 걸어보았다. 1880년대 심어진 하늘을 찌를 듯 키 큰 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트레일은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 조용하고 한적해서 명상하듯 걷는 데에 딱이었다. "역시 뉴질랜드는 풍경이 다 하는구나." 어딜 가나 이런 자연을 쉽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정말 신이 주신 선물임에 틀림없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뉴질랜드 사람들이 관광객들에게 당부를 거듭하고 환경보전 및 관광세를 걷는 등 열심히 환경을 관리하고 보존하려는 거겠지. 한참을 걷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어서인지 배고프다는 신호를 감지하고 메인 스트리트로 방향을 틀었다.


애로우 리버 트레일 © 2020 킨스데이 

 

  중심가에는 19세기를 연상케 하는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로컬 상점과 카페, 식당 건물이 즐비했다. 쇠퇴한 금광 마을이라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우아하게 고급지면서 매력적인 관광 마을로 탈바꿈한 느낌이 들었다. 아기자기하고 값비싼 아이템들을 취급하는 갤러리와 리빙용품 편집샵, 가구점, 보석가게 등 눈이 이끄는 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걷다가 야외 식당으로 들어섰다. 평일이었지만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지인이 추천한 '치킨 스파이시 파이'와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고 그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노인 부부에서부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광객과 주민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앉아 대화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혼자라서 좀 심심하긴 했지만 그만큼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편하니까 퉁치기로 했다. 스파이시 치킨 파이는 생각보다는 한국인 입맛에 그다지 맵지는 않았지만 따끈따끈한 겉바속촉이라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먹고 난 후 애로우타운 언덕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해가 쨍쨍 내리쬐서 덥기는 했지만 애로우타운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니 도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점심으로 먹은 겉바속촉 스파이시 치킨 파이 © 2020 킨스데이


  인적이 드문 언덕 트레일을 따라 홀로 걸었다. 너무 적막해서 약간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나무들 사이로 고택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어떻게 이렇게 경사진 곳에 손으로 직접 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링컨의 만화 위인전이 떠올랐다. 링컨이 아이였을 때 부모님과 누나와 같이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잘라 집을 지었다는 내용이었는데 도시의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경험이 전부인 나로서는 도무지 그림을 봐도 상상이 되지 않아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느낌이었을까? EBS에서 방영했던 <숲이 그린집>에 나오는 집들도 떠올랐다. 벌레나 야생 동물은 무섭지만 뭔가 숲이 주는 특유의 매력이 있을 것 같긴 했다.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깬다던지, 나뭇잎으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다던지, 도시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숲 속의 ASMR을 누리는 사치라고 해야 할까?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는 숲 속에다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싶다는 아주 야망스런 다짐을 해봤다. 한참을 올라가니 오른쪽 방향으로 저너머에 애로타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십 분째 건조하게 메마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살짝 지쳐있었는데 이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그래, 이래서 올라가는 거지,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 스스로를 푸시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시원하게 사방이 뻥 뚫린 가운데 하늘과 나, 그리고 언덕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정복자가 된 느낌이었다. 저 아래 애로우타운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아기자기하구나.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오르막길을 따라 정상에 이른 이 작은 성취의 대가를 충분히 만끽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생수병을 원샷했다. 갈증이 싹 가셨다.      


애로우타운 언덕길로 향하는 시원한 여름 숲 속의 트레일 © 2020 킨스데이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 2020 킨스데이 


한눈에 보이는 애로우타운 전경 © 2020 킨스데이 

   애로우타운 시내로 돌아가는 내리막길은 한결 수월했다. 그럼에도 한때 락클라이밍을 하느라 등산을 자주 해본 터라 긴장이 풀리는 내리막길에서 항상 사고가 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조심하며 내려왔다. 여행보험을 들기는 했지만 다치면 골치 아프고 나만 손해니까. 퀸즈타운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나절 코스로 애로우타운은 괜찮은 편이었다고 자평해 보았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마라탕처럼 중독성 있는 매운맛은 전혀 아니었지만 은근한 맛이 일품인 어니언 수프 느낌이라고나 할까. 심심한 것 같으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매력, 한적하게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그런 매력이 빛나는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관광객들로 붐붐 북적이는 바이브로 가득한 퀸즈타운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멕시칸 타코로 정했다. 퀸즈타운의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오늘 밤을 맘껏 즐겨보자. 내일은 '마운트쿡'이라는 새로운 여정이 또 펼쳐질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승마투어로 글레노키의 파노라마 풍경에 빠져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