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Jan 24. 2024

메리노울 양들이 행복한 동물농장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뉴질랜드 마운트 니콜라스 하이 컨츄리 농장 방문기

  "뉴질랜드는 사람보다 양이 더 많대요. 우리 양떼목장 투어해보면 어때요?"


콜린과 퀸즈타운 비치를 거닐다가 여행사들이 칠판에 써놓은 프로그램 리스트 앞에 잠시 발을 멈췄다. 그중에 메리노울을 생산하는 양떼목장 투어가 눈에 띄었다. 여행사 부스에서 바로 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춰 보트에 올랐다. 갑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서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우리는 농장으로 향했다. 보트에서 내렸더니 소 한 마리가 무심한 듯 마치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닭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우리 근처를 배회했고 어린양 한 마리가 가이드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여긴 진짜 방목을 하는구나. 동물들도 행복해 보이네.'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 가이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이번에 방문한 마운트 니콜라스 하이 컨츄리 농장은 오랜 세월 가족이 경영을 하고 있고, 대략 3만 마리의 메리노 양과 2천2백 마리의 소를 키우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동물 농장 중에 하나라고 한다. 전통적인 농장 운영 방법을 고수하면서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수력에너지를 사용하고 식량 자급자족 시스템을 도입했단다.


마운트 니콜라스 농장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소 한 마리와 양 한 마리 © 2020 킨스데이

  

  가이드가 호루라기를 "삑"하고 불자 저 멀리서 양치는 개 두 마리가 달려왔다. 신호를 보내자 이 둘은 하트모양을 그리면서 넓디넓은 목장의 반대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재빨리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회색빛 양떼 무리를 우리가 서있는 쪽으로 몰고 왔다. 누가 양이 게으른 동물이라고 했던가. 양들이 무리 지어 우르르 날쌔게 뛰어오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훈련을 잘 받은 양치기 개들이 호루라기에 맞춰 이리저리 양 떼를 이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흡사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연신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양치기 개들과 양 떼의 퍼포먼스를 한참 구경한 다음 우리는 나무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순서대로 자리에 착석했다. 천장이 높고 앞에는 무대가 있었으며 어디선가 특유의 꾸리꾸리한 냄새가 났다. 아마도 메리울 냄새가 아닌가 싶었다. 가이드가 무대 위로 올라가 마운트 니콜라스 하이 컨츄리 농장의 역사와 양털을 깎아 메리노울을 만드는 방법과 절차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옛날에 양털을 깎을 때 사용했다는 녹슨 가위와 바리깡도 보고 메리노울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는데 유쾌하지만은 않은 특유의 양털 냄새가 코를 찔렀고 기름과 분비물이 어우러져 찐득한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번 세탁 과정을 통해서 메리노울이 탄생하는구나. ” 이어서 우리는 간단한 점심을 먹고 쇼룸에서 메리노울로 만든 다양한 제품을 구경했다. 가격은 정말 비싼 반면 디자인과 색상은 클래식해서 이거 누가 살까 싶었다.


양털을 깍는 데 쓰이는 전통 수공구와 양털 © 2020 킨스데이


자유시간 동안 콜린과 나는 천천히 농장을 거닐었다. 땅덩이가 넓은 뉴질랜드의 농장 스케일은 대관령 목장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이 농장만 해도 그 규모가 십만 에이커라고 하니 평으로 환산하면 대략 1억 2천2백만 평에 이른다. 뉴질랜드에서 4백만 명의 인구보다 양들이 더 많다는 건 농담이 아닌 팩트인 셈이다. 도시에서 나고 태어나 시골 생활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그래서 창피함 마저 드는) 이번 양떼목장투어를 통해 양과 소, 닭 등 가축동물을 초지에 방목하며 키우는 현장을 살짝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좁은 공장식 케이지에서 기계처럼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 넓은 초지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공생하는 모습에서 그냥 막 떠오른 생각이지만 여기 동물의 웰빙 지수가 상당히 높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나라 국민의 웰빙 지수보다 더 높을 지도. 그래서 뉴질랜드산 메리노울이 가격이 비싼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행복한 양에서 나온 양털은 그렇지 않은 양보다 더 나은 퀄리티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비싼 가격 인정. 한 때 동물 보호권에 대해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기후 위기 시대에 사람의 눈높이가 아닌 동물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공존하는 방법을 도모하는 데 내 관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상업적인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목장주가 동물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어떻게 최소화하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런 질문들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우리를 태운 보트는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퀸즈타운으로 돌아갔다.


양치기 개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달려오는 양 떼 무리 © 2020 킨스데이
매거진의 이전글 갑자기 여행 버디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