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Jan 25. 2024

장미꽃이 만발한 여름 정원을 방문하다

뉴질랜드_퀸즈타운 가든스

  퀸즈타운에서 무료로 경험할 수 있는 관광 액티비티 중에 하나가 퀴즈타운 가든스 방문이다. 1866년에 조성된 이 정원은 장미 정원과 역사와 높이를 자랑하는 오크 나무, 세콰이어 나무들 뿐 아니라 놀이터, 테니스장, 스케이트보드 공간, 아이스링크 등의 레저시설과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 트레일과도 연결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콜린과 나는 퀸즈타운 베이 비치에서 시작해서 하버 뷰 워크 방향으로 트레일을 따라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퀸즈타운 가든스 입구에 들어섰다. 우선 엄청나게 크고 굵은 긴 세월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콰이어 나무들의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양팔로 감싸 안아보려 했지만 나는 호빗이 된 것처럼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았다. 천선란 작가의 SF 소설 <나인>에서 어느 산에 있던 오래된 나무들이 주인공에게 그동안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 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건강하게 오랜 시간 이렇게 버티고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당연히 들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거친 나무껍질에 대고 내 마음을 전했다.


퀸즈타운 가든스의 풍경 © 2020 킨스데이
장미 정원에서 만난 건강하고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발산중인 장미꽃들 © 2020 킨스데이   


  한참을 걷다 보니 장미 정원이 나왔다. 마침 정원사들이 시들은 장미꽃을 잘라내고 물을 주는 등 한창 작업 중이었다. 사교성이 좋은 콜린이 먼저 이들에게 다가가 "잘라낸 장미를 가져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흔쾌히 승낙을 받아낸 우리는 배낭에 두 송이씩 장미를 꽂고 기분 좋게 주변을 걸으며 장미를 관찰했다. 색상과 종류가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장미꽃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면서 싱그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마치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건강한 여자아이의 미소를 보는 느낌이었다. 벌과 나비들이 바쁘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열일을 하고 있었다. 코를 가까이 대고 장미향도 맡아보았다. 꽃집에서 파는 꽃들은 향기가 없는 것도 많은데 역시 생명력 있는 건강한 장미들은 다르구나. 특유의 짙은 장미향을 맡으면서 내 기분도 저절로 업이 됐다. 콜린과 나는 정신없이 장미 정원을 휘젓고 다니며 아름다운 장미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와카티푸 호수 트레일 풍경 © 2020 킨스데이 


  우리는 장미정원을 나와 계속 걷다가 와카티푸 호수로 연결된 트레일로 접어들었다. 푸른빛 투명한 호수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언덕, 그리고 녹음 짙은 나무들에 이르기까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뻥 둘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들 퀸즈타운, 퀸즈타운, 노래를 하는 거구나." 굳이 심장이 터질 만큼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번지점핑이나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맘 편하게 트레일만 걸어도 충분히 행복과 힐링을 차고 넘치는 곳이 바로 퀸즈타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꽤 비싼 숙박비와 밤새 시끄럽고 복작대는 퀸즈타운 시내는 별로지만.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바람에 잘게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며 각자 명상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콜린과 나는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편안한 그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콜린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너처럼 아시아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 으흠? 갑자기? 키가 크고 듬직한 체구를 가진 50대 후반 독일 여성의 눈에는 까만 긴 머리에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작고 아담한 내 모습이 보기에 좋았나 보다. "그래? 칭찬 맞지? 나는 다시 태어나면 돈 많은 백인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데? 하하하" 우리는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하며 한바탕 웃고 나서 다시 기운차게 일어섰다. 여름 한낮의 따가운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한참을 걷다가 돌멩이 평지가 있는 나무 그늘에 잠시 누워서 쉬기로 했다. 윈드브레이커를 바닥에 깔고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과 구름, 날아가는 새, 나무, 호수에 이르기까지 나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 순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마음 편히 여유로운 바로 이 순간을. 이렇게 다짐을 하는데 졸음이 밀려왔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워낙 잠자리에 민감한 스타일인데 이런 데서 잠이 들다니 내 마음이 완전무장해제가 된 것 같아 신기했다.


  콜린과 나는 저녁 식사 메뉴 선정을 논의하면서 다시 퀸즈타운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아시안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콜린의 다음 행선지는 미국 하와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개인차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난 독일 사람들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과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콜린 역시 '장기 세계 여행'이란 큰 도전을 씩씩하게 수행하는 중이었다.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하고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나와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나는 뉴질랜드에 더 머물 예정이라 이제는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짧았지만 함께 보낸 추억을 서로 나누며 오랫동안 포옹을 했다. 서로의 힘찬 내일을 응원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나는 콜린과 헤어졌다. 별들이 유난히 촘촘하게 반짝이는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리노울 양들이 행복한 동물농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