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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Feb 16. 2024

물개들의 시에스타를 존중할 수 있다면

뉴질랜드 케이프 팰리서 등대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눈에 띄게 체감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연 생태계와 공존, 공생하려고 노력하는 뉴질랜더들의 노력"이었다. 물론 관광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뉴질랜드 수도인 웰링턴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려가면 케이프 팰리서에 도착한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역사 깊은 등대가 있고 그 근처에 물개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파도가 지나가는 자리>의 한 장면 © Touchstone Pictures


  1897년에 설치된 케이프 팰리서 등대는 250개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감히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흰색 바탕에 빨간색 포인트를 준 등대는 마치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주연한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한 장면 같은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 옛날 지나가는 어선들을 위해 밤마다 오일로 불을 밝혔다는 점과 이를 위해 누구인지 모를 등대지기가 외로움과 싸우며  (혹은 고독을 즐기며?) 그 역할을 감당했다는 생각이 드니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케어(Care)'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케이프 팰리서 등대 © 킨스데이 2020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해변가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는 물개들이었다. 엄마, 아빠, 이모, 누나, 아기 물개들이 함께 무리를 지어 살고 있다는 광경 자체가 신선하면서도 여기가 동물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다행스러운 안도감마저 들었다.  뉴질랜드 정부가 물개를 케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특유의 물개 냄새를 피하는 동시에 그들의 집에 불법 침입을 하지 않기 위해 멀찍이서 이들을 바라보았다. 여행사 가이드인 필립 씨가 "조용히 멀리서만 보세요, "라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물개가 자기 집에서 편하게 시에스타를 누릴 권리. 그린피스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이 권리를 당연히 지켜주고 싶었다. 이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우리를 향해 "꺼져(Fuck Off)!"라고 외칠지 모르겠다.  


케이프 팰리서의 물개들 © 킨스데이 2020 


  찾아보니 물개 수컷의 생식기가 정력에 좋다고 해서 한 때 마구잡이로 남획했다가 멸종 위기에 몰려 해양 멸종 동물로 선정된 후에야 비로소 보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물개 수컷 한 마리에 암컷 30~50마리가 함께 사는 하렘(Harem)을 형성하고 암컷은 한 번에 한 마리씩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만의 암묵적인 시스템과 원칙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물개의 시에스타를 한참 지켜보다가 우리 일행은 자리를 떴다. 쓰레기도 만들 필요 없고, 소음도 낼 필요 없이 우리는 물개와 잘 살 수 있다. 이게 바로 뉴질랜드 정부가 뉴질랜더와 외부 관광객들과 함께 케이프 팰리서를 유지 관리하는 방법, 그리고 물개와 공존, 공생하는 방법이겠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저녁 식사는 아무래도 비건 메뉴로 선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Netzero by 2050과 같은 거대 담론은 잘 모르겠고 그나마 내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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