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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Feb 26. 2024

스타벅스도 오후 5시에 문 닫는 고스트 타운

뉴질랜드 타우랑가 CBD 불금 관찰기

  금요일 오후 6시 반.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원하게 디저트 음료 한 잔을 하려고 걷고 있는데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스타벅스 마저 문을 닫고 개미 한 마리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시내 거리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여름 해가 지기도 전인 뙤약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대낮의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며 다급하게 로밍한 스마트폰 화면에서 구글맵을 열어 오픈한 카페를 확인하면서도 이게 무슨 일이지? 눈을 뜨고도 믿기지 않는 이 광경. 나는 지금 뉴질랜드 타우랑가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에 홀로 서 있었다. 거리에는 지나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었다. 은행, 도서관, 서점과 미용실, 옷가게도 모두 셔터를 내려져 있었고 'Closed' 푯말이 걸려있었다. 한마디로 고스트 타운이었다. 밤새 환하게 깨어있는 서울의 나이트 라이프에 너무나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던 나로서는 지역 경제가 죽어서 그런 건지, 뉴질랜더들이 이리도 워라밸에 진심이어서 그런 건지, 도대체 부러워해야 할지 짜증을 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1년 만에 방문인데도 이런 낯선 풍경에 그저 입을 떡 벌리고 황당할 따름이었다. 믿고 있던 스타벅스마저 이렇게 오후 5시에 셔터를 내린다면 이건 배신이지 않는가. 적어도 떠돌이 관광객에게 "제3의 홈"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맛차 프라푸치노 특유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간절해졌다. 불 꺼진 스타벅스 통유리창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내 얼굴이 비쳤다.

 

구글맵에서 본 스타벅스 타우랑가의 운영 시간 © 킨스데이 2024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나니 타우랑가 CBD 지역 자영업자들이 저녁 영업을 아예 하지 않는 이유가 급 궁금해졌다. 타우랑가는 2022년 기준 15만 8천 명의 인구를 기록했고 매해 꾸준히 인구가 증가 추세에 있는 도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현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 끝에 그 이유를 다분히 주관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재택근무로 CBD 유동인구 감소

  뉴질랜드는 코로나 팬데믹 때 국경을 2년 넘게 장기 폐쇄하며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택에 뉴질랜더들은 재택근무를 체험했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클랜드 홉슨빌에 사는 에디 씨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재택근무를 하고 부인 데이지 씨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6살 초등학생 딸을 양육하고 있다. 이로 인해 CBD에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감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터. 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폐점 시간을 맞춘 셈이다. 손님이 줄면 자영업자는 생존이 어렵다. 그렇다고 퇴근 시간 이후를 고려해 영업시간을 연장하면 될까? 이럴 경우, 인건비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뉴질랜드 최저시급은 현재 22.7 NGD로 한화로 약 18,682 원이다. 한국 대비 1.9배 높은 셈이다(1 NGD = 822.87 원 기준). 뉴질랜드 최저시급은 2024년 4월 1일 기점으로 2% 더 상승 예정이다. 그래서 저녁 영업은 포기하고 주 40 시간 노동 시간을 준수해서 퇴근 시간에 맞춰 폐점 시간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워라밸 모습인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워라밸 선호 경향

  뉴질랜더들은 확실히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긴다. 가족 중심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에드워드 씨의 경우, 온 가족이 모여 저녁 6시쯤 저녁 식사를 한 다음 딸아이를 늦어도 8시까지 잠자리에 들게 한 뒤에 개인 시간을 갖는다. 이때 좋아하는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게임을 하기도 하고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뉴질랜드 고용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달리 야근이나 주말 근무 수당이 별도로 지급되지는 않고 공휴일 근무의 경우에만 1.5배 임금 지급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가족끼리 운영하는 중국 식당이 아닌 이상 늦게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겠다. 결과적으로 2023 글로벌 행복지수에서 뉴질랜드가 10위, 우리나라가 57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워라밸의 문화가 자리 잡힌 뉴질랜더들의 삶의 질은 확실히 우리보다 높아 보인다.  


서울 성동구 송정동의 1유로 프로젝트 (이미지 출처: 브리크 매거진)


  이렇게 CBD 고스트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내가 타우랑가 CBD 자영업자라도 동일한 선택을 하겠다 싶다. 다만 전직 마케터였던 본성이 스멀스멀 올라와 역발상으로 특정 타깃군을 대상으로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니즈를 반영해서 특정 저녁 시간대에 월별이나 분기별 혹은 반기별로 혁신적인 실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아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비즈니스 아이템/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말이다. 최소한 주차장은 무료로 확보가 될 테니까. 물론 혼자서는 안되고 몇몇 상권 파트너들이 같이 동참해 준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건축가이자 도시재생 전문가가 '1 Europ 프로젝트'를 진행해 콘텐츠가 전무했던 송정동으로 고객을 모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로컬 전문가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우리나라 로컬 동네 상권을 개발, 부흥시키려면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있는 카페, 베이커리, 서점, 게스트하우스가 모여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타우랑가 CBD의 프로젝트 콘셉트와 스토리, 관련 파트너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될 것이다. 민간에서 누군가 총대를 메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나서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현지인은 "CBD는 원래 그런 거지.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고 할 수도 있다. 그건 로컬 카운슬이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하면서. 코로나 이후로 1년에 한 번씩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대형 도시 출신 관광객의 눈에는 고스트 타운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고 어쩌면 이게 앞으로 (아니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인구소멸지역의 CBD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일 수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나는 스타벅스의 맛차 프라푸치노 대신 다행히 오후 9시까지 문을 여는 마운트 망가누이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점에서 호주산 분다버그 진저비어 한 병을 구매했다. 달달하면서도 은은한 생강향이 어우러져 톡 쏘는 청량감이 입안에 가득 찼다. 이렇게 뉴질랜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참고로 타우랑가 전체 지역이 불금에 모두 잠드는 것은 아니다. 타운랑가 CBD에서 북쪽을 향해 차로 10~15분 정도 위치에 마운트 망가누이(Mount Managanui)라는 리테일, F&B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다.)


마운트 망가누이 메인 스트리트 전경 (이미지 출처: NZ H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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