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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02. 2024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뉴질랜드 2주 살이에 도전해보니

  

  운전을 하다 보면 사람보다 양과 소를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라 뉴질랜드. 그만큼 축산업은 낙농업과 함께 뉴질랜드 경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슈퍼마켓이나 정육점에 가면 목장에서 자유 방사해서 키운 고퀄의 양, 돼지, 소, 사슴 고기를 저렴하면서 구매할 수 있다. 심지어 지방이 5% 인지 10% 인지까지 친절하게 표기하기도 한다. 삼겹살을 샀는데 지방이 90% 넘었다는 우리나라 케이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를 홀대하지도 않는다. 제철 과일과 채소가 풍부하고 식당이나 카페에도 비건 메뉴가 구비되어 있다. 나는 평소에 플렉시테리언인데 (가능한 육식을 적게 먹으려 하는 부류로 채식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 현지 친구가 페스코 베지테리언(우유, 달걀, 생선까지만 먹는 채식주의자)이라 나도 이번 기회에 친구를 따라서 2주 동안 페스코 베지테리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의 페스코테리언 저녁식사: 그린 샐러드와 버섯 테이, 쿠무라 & 호박 오븐 요리 © 2024 킨스데이


  우선 크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육식만 안 하는 거니까. 한국에 있을 때도 대학생 시절 피부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다니면서 6개월가량 육식을 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대신 샐러드나 채소 오븐 구이 요리를 많이 먹었다. 속이 편하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 체중에 변화는 크지는 않은 것 같고. 여기에 내가 시도한 레시피를 몇 가지 소개해보겠다.


그린 샐러드와 캡시칸 & 후무스 © 2024 킨스데이


  뉴질랜드 슈퍼마켓에서는 샐러드용 채소를 봉지에 넣어 파는데 이게 참 편하다. 나는 "Mesculun Salad Greens"를 좋아한다. 미니 상추와 베이비 시금치 등이 섞여있는 버전이다. 여기에 방울토마토를 4~5개 4 등분해서 잘라서 넣고 당근을 채 썬다. 여름이면 스위트콘도 추가한다. 한국의 초당 옥수수랑 비슷한 맛이다. 단백질을 위해 파마산 치즈도 갈아 넣는다. 든든하게 먹고 싶으면 아보카도를 썰어 넣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발사믹 소스를 어른 숟가락으로 세 스푼 정도 뿌려서 골고루 섞어주면 완성. 간편하면서도 건강하고 맛있다.


  샐러드만으로 좀 부족하다 싶으면 파프리카를 후무스 같은 딥 소스에 찍어 먹는다. 여기에는 동그란 파프리카가 색깔별로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기다란 파프리카로 현지에서는 캡시칸(Capsicum)이라고 부른다. 캡시칸을 길게 잘라서 이등분해 주고 미니 당근도 절반을 잘라 추가하면 준비 끝. 여기에 취향대로 딥 소스를 찍어먹으면 이 또한 가볍게 건강한 식사나 간식이다. 여기 슈퍼마켓에는 후무스 종류가 브랜드와 맛, 사이즈별로 다양하다. 나는 "Just Hummus"의 갈릭 & 레몬맛, "Lisa's Humus"의 오리지널 갈릭 & 레몬맛, "메디터레니언"의 바질 페스토 제품을 특히 좋아한다. 그래서 세일이라도 하는 날에는 몇 개씩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두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구하기 쉽지 않아서 작년에는 큰 사이즈 한 통을 사가지고 한국에 들어가기도 했다.


냉장고를 털어 남은 채소로 만든 라따뚜이 © 2024 킨스데이


  만약 이게 뭐가 식사가 되냐라고 한다면 자유방사한 달걀을 이용해 스크램블을 만들고 표고버섯을 4등분 해서 올리브 오일과 허브맛소금을 추가해 잽싸게 볶아준다. 시간이 좀 있다 싶으면 오븐을 이용해 "라따뚜이"를 요리하기도 한다. 호박, 가지, 토마토, 토마토소스와 버섯, 양파, 마늘에 허브와 올리브오일 정도의 재료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다. 버섯과 양파, 마늘을 잘게 썰어서 우선 올리브오일에 볶고 여기에 토마토소스와 각종 허브와 소금을 적절히 넣어 간을 맞춰준다. 호박과 가지, 토마토는 일정한 크기로 폭으로 비슷하게 썰고 남은 채소들 역시 잘게 썰어 토마토소스에 넣어준다. 오븐용 용기에 소스를 먼저 깔아준 다음 호박, 가지, 토마토를 둥글게 얹어주면 끝. 나는 집에서 늘 사용하는 파마산 치즈를 채로 썰어 위에 뿌려주었다. 예열된 오븐에 넣어주면 끝. 간편한데 굉장히 있어 보이는 채식 요리다. 라따뚜이 레시피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많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다.


크루아상에 스크램블 에그와 채소 및 씨앗 가니쉬 요리 © 2024 킨스데이

  

파란 불빛이 인상적인 하누카 요리 © 2024 킨스데이

  

  집에서 요리하는 게 지겹다면 식당이나 카페로 나가서 비건 요리를 주문하면 된다. 나는 로토루아의 "오켈레 폴 스토어 & 크래프트 비어 가든"의 Smash it Up을 좋아하는데 사워도우 빵에다 아보카도와 베이비 시금치, 선드라이드 토마토에 페타 치즈를 얹어준다. 여기에 수란이나 스크램블을 추가할 수 있다. 웰링턴의 쿠바 스트리트에 있는 "올리브 레스토랑"에 가면 코코넛 요구르트에 오트밀 등 무슬리에 제철 과일 등을 잘게 썰어 예술적으로 디스플레이해 준 브런치를 맛볼 수 있다. 생선 요리가 먹고 싶다면 타우랑가의 "Viet Lane" 레스토랑의 Hapuka Green Curry를 추천한다. 하푸카는 뉴질랜드 주변에 서식하는 몸통이 크고 납작한 생선으로 오래전에 도시어부 프로그램에서 남보라 배우가 대형 하푸카를 낚아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신선한 하푸카찜 위에 커리 잎과 생강, 칠리, 마늘 등으로 깊은 맛이 나는 그린 커리 소스가 담긴 뚝배기 같은 그릇에 불을 붙여서 서빙되는 데 근사한 일품요리이다. 여기에 프레쉬 롤을 추가하면 2인분으로 만족스러운 점심 혹은 저녁 요리가 될 수 있다. 저렴하면서도 캐주얼한 비건 식사를 원한다면 오클랜드의 "Revive Vegan Cafe"를 추천한다. 따뜻한 핫팟 메뉴나 다양한 종류의 콜드 샐러드를 박스 사이즈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디저트를 원한다면 마운트 망가누이의 "Sea People"이다. 비건 아이스크림샵인데 메뉴가 매번 다르지만 내 최애는 에스프레소 브라우니이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답게 피시 앤 칩스도 흔한 메뉴 중에 하나인데 우리 동네의 "아라타키 테이크어웨이"의 도미 튀김과 프렌치프라이는 8천 원대의 가격대에 어울리지 않게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 밖에도 간식으로 플랜트 베이스드 초콜릿과 오트 밀크, 감자칩을 먹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플랜트 베이스드 초콜릿은 일반 초콜릿 대비 좀 더 뻑뻑하고 단맛이 덜해서 건강한 느낌이 났다. 한국에서 나름 미식가였던 나지만 이런 식단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식사 메뉴의 폭을 넓혀주었다. 달걀과 버섯, 각종 채소로 식단이 풍성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임파시블 브랜드나 비욘드 버거 같은 식물성 대체육을 사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주간의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일상의 식단이 조금은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레스토랑을 고를 때 아주 까다로워져서 메뉴를 한참 동안 살펴보다가 자리를 뜰 정도였다. 특히 칼로리를 생각해서 튀긴 생선외에 다르게 조리한 생선 요리를 잘하는 곳이 별로 없고 있더라도 가격이 조금 더 비싸기도 해서 육류 요리보다 비용이 더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건강보조식품을 추가로 더 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과 비타민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려고 나름 노력했다. 다만 라면을 못 먹었다. 여기서는 일교차가 커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도 하는 가을 날씨라 자연스럽게 뜨거운 국물이 떠오르는데 라면의 수프가 대부분 육수 베이스라서 이 유혹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케밥을 좋아하는데 닭과 양고기의 그릴 맛이 가끔 생각났다. 이 밖에는 견딜만했다. 육식 요리가 흔하지만 나름 지조를 지킬 수 있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2주 살기 도전 기간이 끝나면 가장 먼저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신라면 컵면을 몇 개 사 와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채식에 좀 더 무게를 둔 플렉시테리언으로 살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육식을 무 자르듯 단번에 끊기는 어렵겠지만 두부나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도 골고루 먹으면서 최소화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뉴질랜드에서는 삼겹살이나 곱창을 먹지는 않았으니까. 환경을 생각하고 건강을 생각해서 좀 더 프로액티브한 플렉시테리언이 되어야겠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아점은 과일 스무디에 삶은 달걀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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