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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03. 2024

부활절 휴일에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 가보니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뉴질랜드에서는 부활절 기간이 모두가 쉬는 공식적인 휴일이다. 보통 휴일 기간이 주말을 포함하면 4~6일 정도 되다 보니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타우랑가에서는 특이하게도 재즈 페스티벌을 연다. 나같이 싱글인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이벤트다. 아무래도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독일 베를린, 미국 워싱턴 DC, 뉴욕,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유무료로 고퀄의 갤러리, 박물관, 각종 장르별 콘서트, 뮤지컬과 오페라 등에 노출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남반구에 있는 섬 뉴질랜드에서 문화 예술적인 목마름을 크게 느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감기 걸린 몸을 이끌고 억지로 <61회 타우랑가 재즈 페스티벌>의 두 번째 날에 조인했다.


La Tina Band의 연주 모습 © 2024 킨스데이


친구, 가족, 연인 모두가 나와서 즐기는 2024 타우랑가 재즐 페스티벌의 현장 © 2024 킨스데이


  이 페스티벌은 타우랑가시가 타우랑가 항구와 마운트 망가누이 등 여러 파트너와 함께 매년 야심 차게 진행하는 이벤트라 기대해 볼 만했다. 물론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초대 뮤지션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서 즐겨보자는 열린 마음이었다. 특히 골드 코인만 내면 (여기서 골드 코인은 1 뉴질랜드 달러, 2 뉴질랜드 달러에 해당되며 원화로는 약 800원, 1600원가량 됨)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도 미리 준비해 둔 2달러 콜드 코인을 내고 입장했다. 일요일 점심 때라 그런지 이미 사람들이 무대 앞과 근처 레스토랑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료 스테이지에서 "La Tina"란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사실 배고파서 브런치를 먹으면서 즐기고 싶었지만 그들의 특유의 비트와 연주 실력에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재즈라는 생명의 양식이 내 허기를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거지. 바로 이거였어."


차원이 다른 리듬과 멜로디로 소확행을 느끼게 해 준 Jazz Afro Ensemble의 연주 모습 © 2024 킨스데이


   강 근처의 The Strand 로드에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줄지어 있는데 나와 일행은 라이브 재즈 음악 소리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재즈의 매력은 "정답이 없다"라는 것이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100인 100색이다. 친구 말을 빌리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의 연속"이라고나 할까. 나도 발을 까닥이거나 온몸으로 리듬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뮤지션들과 하나가 된다. 이런 몰입의 즐거움이 재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재즈를 처음 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그때 시카고 재즈 밴드와 콘퍼런스 통역 자원봉사를 했는데 시카고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고 홀딱 반하고 말았다. 건반 위에서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니. 피아노 전공으로 예고를 갈까 잠깐 고민한 적이 있었던 나에게 이것은 문화적인 혁명 그 자체였다. 그 이후로 국내나 해외에서 기회가 있다면 재즈 라이브 클럽을 가려고 노력했다. 뉴욕의 블루노트, 시카고의 라이브 재즈 클럽, 방콕의 색소폰펍, 쿠바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등. 매년 열리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과 동네 아트센터에서 열린 나윤선 콘서트도 기억에 남는다. 작년에 개봉했던 재즈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는 N차 관람을 할 정도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재즈의 고향인 미국 루이지애나에 꼭 가보고 싶다.


  나는 보통 콰르텟이나 퀸텟  밴드를 좋아한다. 색소폰이나 트럼펫, 드럼, 베이스, 피아노 구성이 좀 더 안정감 있고 내 취향과도 얼추 잘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듀오나 트리오, 빅 밴드를 거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플루트/트럼펫, 바이올린, 베이스, 드럼 밴드의 흥나는 연주를 들었고 아코디언과 보컬/우쿨렐레/기타로 프랑스 재즈 곡을 선보인 여성 듀오의 연주도 들었다. 요리를 할 때 주로 프랑스 재즈 음악을 듣곤 했는데 마침 내가 아는 곡인 “Menilmontant”을 연주해서 반가웠다. 역시 많이 알아야 들린다. 길을 걷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간 곳은 Jazz Afro ensemble의 신명 나는 연주였다. 가나 출신의 유명한 드러머가 리드를 하고 여기에 퍼커션 2명, 베이스 1명, 색소폰 (테너, 바리톤) 2명, 트럼펫 1명, 트롬본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헤쳐 모여를 아주 탄력 있게 멜로디와 리듬을 서로 즐기면서 연주를 했다. 어느새 내 몸이 저절로 리듬에 맞춰 흔들리고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가 되는 광경에 이게 바로 소확행이지 싶었다.


마운트 망가누이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Lockie Bennet Quarter 연주 모습 © 2024 킨스데이


  다음 날 오전에는 마운트 망가누이의 무대에서 Lockie Bennet Quartet의 연주를 운 좋게 들을 수 있었다. 색소폰과 베이스 기타, 더블 베이스와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였는데 현지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지인에 따르면 색소폰 주자와 베이스 기타리스트는 월드 클래스 수준급이라고 했다. 역시나 귀가 호강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뒤에 나온 빅 밴드의 소음 수준에 가까운 요란한 연주는 내게 두통을 안겨주었고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게 되었다.


 얼마 전 성수동의 게토 얼라이브 공연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찌 보면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도 작고 경쟁도 치열하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을까 싶긴 하다만 서도. <블루 자이언트>의 주인공 미나모토 다이처럼 청중에게 내 연주와 내 느낌, 감정을 나누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뮤지션이든, 아니면 그냥 연주 자체가 즐거워서 취미로 재즈 연주를 즐기는 그 누군가든, 그것도 아니면 재즈 마니아로서 이들을 서포트하는 청중의 하나든, 지금까지 재즈 음악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 또한 한 명의 청중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재즈 음악을 즐기고 소비하면서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응원하려 한다. 자칫 외로울 수 있었던 부활절 휴일을 타우랑가 재즈 페스티벌 덕분에 문화 예술 에너지를 풀충전 할 수 있었다. 관련 모든 이해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년 부활절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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