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Apr 07. 2024

AI 시대에 빈티지카 퍼레이드라고요?


  지난 뉴질랜드 타우랑가의 부활절 휴일 기간에 경험한 또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는 바로 "빈티지카 퍼레이드"였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한 과도기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해외여행을 가면 빈티지 샵이나 벼룩시장에서 신기한 앤티크 아이템들을 둘러보고 맛난 음식도 먹으며 쇼핑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마치 타임 슬립이라도 한 것처럼 유럽의 어느 시대를 엿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재미있었다. 영국 런던의 보로우 마켓과 포토벨로 마켓에서 뭉텅이로 구매한 각종 디자인의 스카프, 프랑스 파리 센강을 따라 고문서를 파는 서점에서 구매한 작은 그림엽서, 독일 베를린의 주말 벼룩시장에서 맛본 커리 핫도그, 핀란드 헬싱키의 리러브 샵에서 마신 차와 디저트까지. 그런데 빈티지카라니. 영화 <위대한 게츠비>이나 <타이타닉>에서 본 그런 빈티지카를 볼 수 있다는 건가? 네이피어의 아르데코 트러스트 회원들이 투어용으로 세워둔 빈티지카는 몇 대 본 적이 있고 쿠바에서 빈티지카 투어는 잠깐 해보았지만, 카퍼레이드는 처음이라 '차알못'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운트 망가누이의 코로네이션 파크에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수십대의 빈티지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빈티지카들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였다. 색상도 요즘은 보기 힘든 우아한 와인색, 다크 그린색, 하늘색, 크림색, 오렌지색, 옅은 노란색 등 다채로웠고 디자인 역시 말 그대로 선의 미학이랄까, 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내 얼굴이 비칠 것만 같이 반짝반짝 광택이 남다른 외부와 더불어 깨끗하게 관리된 내연 기관도 볼 수 있었다. 어떤 크림색 차 내부에는 커다란 흰색 테디베어가 운전석에 앉아 우리를 맞아주기도 했다. 트렁크가 따로 없던 4륜 차량의 경우, 여행용 짐을 싣는 칸이 별도로 차 후미에 달려있는 것도 신기했고 트렁크 부분의 뒷 양문의 틀이 나무로 만들어진 차도 흥미로웠다. 브랜드 차원에서는 포드와 미니, 마이너 차량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효능성보다는 미학성을 더 추구했던, 그리고 아마도 기술적으로 혁신적이었을 그 시절 시대상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카 오너들은 (당연하겠지만) 대부분 시니어들이었는데 미리 가져온 캠핑용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잘 키운 자식을 선보이는 자부심 가득한 부모의 모습이 연상됐다. 자신들의 취미 생활을 가족들, 연인, 친구들로 구성된 젊은 세대들과 이렇게 공유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빈티지카 © 2024 킨스데이


   단연코 하이라이트는 카퍼레이드였다. 나는 친구와 함께 시간에 맞춰 메인 로드에 있는 베트남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가 바로 눈앞에서 이런 빈티지카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차량들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죽은 차들과 달랐다. 줄지어 천천히 굴러가는 빈티지카들의 디자인과 색상, 경적 소리는 길 양옆에 주차된 요즘 신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연 눈에 확연히 돋보였다. 길을 가던 사람들도 사진을 찍고 손을 흔들면서 빈티지 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나 지금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아." 친구와 나는 아름답고 우아한 빈티지카들을 바라보면서 이 순간을 즐겼다. 한 스무 대 가량 지나갔을까? 빈티지카 오너들의 세심한 유지 보수를 위한 애정과 끈기, 경제적인 여유 그리고 자부심 이 네 박자가 골고루 조화를 이뤄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허세나 허영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소박한(!) 동아리 활동에 내가 동참하고 있다고 느껴졌으니까.      


마운트 망가누이 메인도로에서 진행된 빈티지카 퍼레이드 © 2024 킨스데이
마운트 망가누이 메인도로에서 진행된 빈티지카 퍼레이드 © 2024 킨스데이
마운트 망가누이 메인도로에서 진행된 빈티지카 퍼레이드 © 2024 킨스데이
마운트 망가누이 메인도로에서 진행된 빈티지카 퍼레이드 © 2024 킨스데이


  해외에서는 클래식카가 와인과 시계, 미술품을 제치고 실물 대체 투자 대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클래식카 전용 펀드'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레트로" 열품이 불면서 점점 30년 이상된 클래식카, 빈티지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경기도 용인에는 클래식카 30대 정도 수집한 분이 클래식카를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하신다니 기회가 되면 방문해보려고 한다.


  현지 지인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빈티지카 문화는 그저 부자들의 고급스러운 개인 취미 생활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섬나라 뉴질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차량보급율이 높은 반면 대중교통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이런 상황에서 키위들은 차가 15년 이상 노후될 때까지 고쳐 쓰고 또 고쳐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니어들 사이에서 빈티지카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일본에서 중고차가 수입되기 시작했고 요즘 젊은 키위들은 일본 신차 혹은 한국 신차를 구매한다. 


  이번에 빈티지카 퍼레이드를 보면서 AI 시대에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고 하면 너무 진부한 표현일까? 하지만 사실이다. 이런 카들은 가보처럼 관리받으면서 차고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가 대대손손 물려주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물건의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의 이야기, 그 문화와 경험이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암스테르담 친구 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물려주신 서랍 가구와 작은 전등, 엄마가 물려주신 주방 용품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 고풍스러운 소박함에 "참 멋지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손때 묻은 빈티지 용품들이 들려주는 상상력 넘치는 스토리가 또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저렴하게 금방 쓰고 버릴 수 있는 물건은 가능하면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는 대대손손 물려받은 아이템이 전혀 없다. 그나마 아빠가 가끔씩 연주하던 오래된 풍금 오르간도 집에서 자리를 차지한다는 이유로 얼마 전에 갖다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쉽다. 어릴 적 함께 모여 풍금을 연주하던 작은 추억 하나가 사라져 버린 셈이니까. 앞으로 책 한 권, 가구 하나를 내 공간에 들일 때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겠다. 그리고 필요 없는 것들은 당근에다 정리하는 것으로. 이렇게 빈티지카 퍼레이드를 보고 쇼핑 습관 제고 및 빈티지 제품에 대한 선호가 강화되다니, 참으로 바람직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활절 휴일에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 가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