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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Apr 12. 2024

Open Mic Night에 데뷔한 이웃집 소녀

느슨한 커뮤니티이란 이런 것

  

  한국 사람치고 자의든 타의든 노래방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가라오케는 이제 전 세계 시민들이 즐기는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브리지 존슨의 일기> 나 <500일의 썸머> 같은 영화에서도 회식으로 가라오케 타임을 갖고 주인공이 만취해 절규하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이젠 우리에겐 익숙하다.


500일의 썸머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https://www.melon.com/musicstory/detail.htm?mstorySeq=427)

  


  뉴질랜드에서도 동네 주민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른다. 대신 노래방 기계가 아닌 라이브 연주에 맞춰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마운트 망가누이 근처에 있는 “소셜 클럽”에 가면 “오픈 마이크 나이트(Open Mic Night)”가 열린다. 동네에서 악기상점을 운영하는 “뮤직 플래닛“ 사장님 데이빗이 호스트다. 유쾌하고  넉넉한 성품을 갖춘 분이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 온 사람들이 당일 데이빗에게 신청하면 순서에 맞춰 노래를 하고 함께 연주를 할 수 있다. 오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무료로 참여가능하고 따뜻한 호응과 격려를 보낸다.


 한 번은 아역 뮤지컬 배우 출신 이웃집 딸 니나가 오픈 마이크 나이트 데뷔를 하게 되어 응원차 참석한 적이 있다. 지나다가 열린 창문 사이로 “Let it go” 노랫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11살 소녀치고는 듣기에 꽤 괜찮았다. 그래서 기타리스트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기꺼이 니나를 오픈마이크 나이트에 초대해 준 것이다. 마침 니나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어린 코제트역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무대 경험을 늘리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부모도 흔쾌히 동의하며 감사해했다. 오픈 마이크 나이트 전날 인트로와 브릿지 등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 니나는 내 친구의 기타 반주에 맞춰 리허설을 진행했다.  


오픈 마이크 나이트 무대에선 니나 (가운데) © 킨스데이 2024

  

  다음날, 니나의 데뷔 곡은 뮤지컬 레미제라블 넘버인 "Castle on the Cloud"와 에드 시런의 "Perfect"였다. 어르신들이 주로 참석하는 이벤트에서 작은 금발 머리 소녀가 청아하면서도 파워풀하게 열창을 하니 다들 반응이 뜨거웠다. 초반에는 긴장했는지 니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이내 실력을 발휘해 무대를 사로잡았다. 두 번째 곡 "퍼펙트"를 부를 때는 나도 객석에서 박자에 맞춰 셰이커를 흔들며 힘을 보탰다. 후렴구 부분에는 떼창을 했다. 


Baby, I'm dancing in the dark

With you between my arms

Barefoot on the grass

Listening to our favorite song

When I saw you in that dress, looking so beautiful

I don't deserve this

Darling, you look perfect tonight~


- 퍼펙트의 후렴구 중에서-


  음악의 힘은 참 대단하고 경이롭다. 연령과 성별, 종교, 인종을 떠나 하나로 대동단결 시키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마치 영화 < 보헤미안 램소디>의 웸블리에서 있던 Live Aid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서 7만 2천 명의 청중이 “위 아더 챔피언”을 열창하며 퀸과 하나가 된 것처럼 우리는 이날 밤 퍼펙트란 노래로 퍼펙트하게 하나가 되었다.


  “Cheers! Congrats!”

니나 엄마 아이바와 나는 비디오 녹화를 하고 사진을 찍기에 분주했다. 잠재력을 가진 어린이에게 작은 바운더리를 확장하는 경험을 제공한 것에 조금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무대 연주를 마치고 우리는 다같이 진저비어를 마시며 니나의 성공적인(!) 오픈 마이크 나이트 데뷔를 축하했다.


급 조성된 실력을 선보인 6인조의 유쾌한 무대 © 2024 킨스데이

  

  다음 무대는 6인조 혼성 그룹의 무대였다. 편안한 옷차림의 동네 주민들이 나와 어설픈 악기 연주와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런 무대가 멋진 것은 모두가 이 순간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기타가 튜닝이 되어있지 않아도 박자가 틀리고 삑 소리가 나도 모두가 즐거웠다. 또 따라 부르며 응원을 했다. 흥에 겨우면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이런 게 커뮤니티지 않을까? 느슨한 연대 속에 서로의 긍정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기대치는 전혀 없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은 무대, 조금 더 나은 연주가 되기 위해 슬그머니 기타나 베이스, 드럼, 셰이커를 들고 동참하는 것.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각자 작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 곡의 노래를 완성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마운트 망가누이의 오픈 마이크 나이트에서 목격한 "느슨한 커뮤니티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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