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의 꽃인 의자, 앉아보기 전엔 아무도 모릅니다

by 킨스데이

3년 전, 가구 제작용 목공을 풀타임으로 인텐시브 하게 배운 적이 있습니다. 톱질을 하고 끌로 다듬어 나무 박스와 액자를 만들고, 스툴과 캐비닛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과제가 바로 ‘의자’였습니다. 저는 야심 차게 흔들의자에 도전했습니다. 다들 고개를 저었습니다. 의자는 ‘가구의 꽃’이라 불릴 만큼 어렵고 정교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흔들의자는 거실 한켠에 놓여 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그 위에 앉아 조용히 몸을 흔듭니다. 만들어본 사람은 압니다. 의자는 단순히 앉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This is Not a Rocking Chair"라는 제목으로 만든 원목 흔들의자 (사진 제공: 킨스데이)


요즘 의자는 가볍고 저렴한 플라스틱 제품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TV 프로그램 속 연예인들의 집을 보면, 어김없이 이름 있는 디자이너의 의자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의자는 기능을 넘어 공간의 분위기와 태도를 결정합니다. 인테리어에서 의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토크 이벤트였습니다. 칼바람을 뚫고 모인 사람들로 공간은 가득 찼고, 다행히 빈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흔히 행사장에서 볼 수 있는 등받이가 있는 하얀 플라스틱 의자였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고 20분쯤 지났을까요. 엉덩이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불편함은 집중력을 갉아먹었고, 내용은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패딩을 벗어 쿠션으로 써볼까 고민하다가, 쉬는 시간을 틈타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몇 시간짜리 행사에 이런 의자를 내놓은 것에 대한, 아주 소심한 항의였습니다. 그날 저는 강연 대신 전시를 봤습니다. 의자 하나가 경험 전체를 바꿔버린 순간이었습니다.


비슷한 경험은 또 있습니다. 오픈 기념 콘퍼런스를 기획하며 알게 된 명동의 한 공간에 제가 가르치던 외국인 대학생들을 데리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강연 내용에 대한 평은 거의 없고, “의자를 바꿔달라”는 의견만 가득했습니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멋진 공간이었지만, 테이블과 의자에서는 사용자의 경험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 것이죠. 성수동의 어느 코워킹 스페이스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구들이 겉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막상 앉아보니 무겁고 사이즈가 맞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공간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곳에 앉았던 자신의 몸을 기억하지요. 카페를 갈 때도 비슷합니다. 창가 자리를 좋아하지만, 의자가 불편하다면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뷰를 포기하더라도 내 몸을 제대로 받쳐주는 의자를 고릅니다. 어느새 의자는 제가 그 공간을 다시 찾을지 말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끔 상상해 봅니다. 언젠가 나만의 집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의자를 들여놓을까 하고 말이죠.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신 편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앉아보고, 사용해 보고, 손님이 와도 오래 머물 수 있는 의자. 청소할 때 가볍게 옮길 수 있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의자. 그 정도면 제겐 충분합니다.


찾아보니 국내에는 의자만 다루는 다큐멘터리 잡지도 있습니다. 특정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의자에 쏟아붓는 진심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온돌 마루 위에 앉던 문화였지만, 1900년대 개항 이후 의자는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관절을 위해선 의자가 낫다고 하고, 또 의사들은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에 빈자리가 보이면 우리는 가장 먼저 앉으려 합니다. 이제 의자는 선택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트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프리랜서이기에, 저는 의자를 쉽게 넘기지 못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디에 앉아 보냈는지 떠올려보면, 그날의 컨디션이 함께 기억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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