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어요. 평일 시간이 비교적 유연한 프리랜서라,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한적한 영화관에서 여유롭게 보고 싶거든요. 영화는 제게 ‘시간을 들여 감상하는 경험’이니까요.
얼마 전 임윤찬 공연에서 관크(관람 크리티컬)가 있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클래식 공연처럼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하는 자리에서의 관크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사실 영화관에도 관크는 늘 존재합니다. 물론 티켓 가격이나 긴장감의 결이 다를 뿐, 영화 역시 집중이 깨지는 순간 그 경험은 쉽게 망가져요. 그리고 저는, 그래선 안되지만, 생각보다 관크를 피해 자주 자리를 옮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작년 화제작이었던 <세계의 주인>을 보러 갔을 때였어요. 비 오는 평일 이른 오후, 관객도 많지 않았고 저는 늘 그렇듯 조금 일찍 자리를 잡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때 중년 커플 한 쌍이 팝콘을 들고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광고가 나오는 동안 “와그작, 와그작.” 팝콘 소리와 함께 대화가 이어졌고, 저는 긴장한 상태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영화가 시작하면 조용해지겠지?’
‘아니면… 지금 옮겨야 하나?’
사실 저는 사람들이 영화 상영 중에 자리를 옮기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영화 관람 에티켓이 없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민폐라고 여기거든요. 하지만 광고가 끝나기 전, 저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옮기자.'
오랜만에 마음먹고 온 영화관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순식간에 짐을 챙겨 잽싸게 앞열로 이동했고, 다행히 영화는 온전히 제 것이 되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아바타 3>를 스크린 X 3D관에서 봤어요. 아이맥스와 고민하다가 ‘새로운 경험’을 택했죠. 평일 오전이라 관은 한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뒷좌석 커플이 문제였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큰 대화. 다들 집에서 보던 습관 때문일까요?
‘안 돼. 이건 더 비싼 티켓이잖아...’
속으로 절망하며 또다시 고민했습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일찍 티켓팅하면 원래 이런 걸 감수해야 하나? 결국 이번에도 자리를 옮겼어요. 마침 3D 안경에 흠집이 나서 교체하러 나갔다가, 자연스럽게 앞 좌석에 안착했습니다. 다행히 광고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어요. 아이맥스가 화면 크기로 압도한다면, 스크린 X는 시야를 편하게 확장시켜 줬습니다. 양옆까지 펼쳐지는 화면 덕분에 어지러움은 덜하고 몰입은 더 깊었거든요. 17,000원의 티켓값으로 경험한 제임스 카메론식 비주얼 축제. 하늘 부족들이 해파리 모양의 생명체를 타고 판도라의 하늘을 나는 장면, 주인공이 거대 붉은 익룡 투르크를 타고 전투를 벌이는 장면, 툴쿤이 인간과 벌이는 바닷속 전투 장면 등 TV나 모바일 화면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시각과 청각 도파민을 내뿜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왜 친구가 꼭 영화관에서 보라고 강추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처음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고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으로 유명한 <미션>이에요.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화가 풀리지 않은 엄마가 어린 세 딸을 데리고 극장에 가셨거든요. 초등학생이던 저는 줄거리는 잘 몰랐지만, 로버트 드 니로가 짐 봇다리를 짊어지고 폭포 옆 절벽을 오르고 또 오르던 장면만큼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영화관은 제게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영감으로 버무려진 특별한 장소가 되었어요. 제 인생 영화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입니다. 그 영화가 저를 케냐로 데려갔고, 실제로 그 땅을 밟게 했으니까요. 카렌 블릭센의 생가 뮤지엄에서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OTT 시대에도, 영화관에서 반드시 보고 싶은 영화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어요. 한국 영화는 성장했고, 감독과 배우들은 세계로 나아가고 있지만 정작 극장은 점점 비어 가고 있죠. 티켓은 비싸지고, 가성비와 가심비를 따질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내 뒤통수를 한 대 치는 이야기”를 “어둠 속에서, 큰 화면으로, 돌비 음향을 들으며” 보고 싶습니다. 무대인사를 해도 매진이 되지 않는 요즘이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관람을 존중하는 에티켓, 그리고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몰입의 순간. 다음에 저도 광고 시간 중에라도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되는 영화 관람을 하고 싶습니다. 관크 없이, 모두가 스크린에만 오롯이 집중해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