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눈☃을 좋아합니다, 작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by 킨스데이

어젯밤, 저희 동네에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오면 저는 꽁꽁 싸매고 집을 나섭니다. 강아지처럼 아파트 옆 공원으로 직진하지요.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벤치 위로 소복이 쌓이는 흰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영상으로 남겼고, 한여름을 즐기는 뉴질랜드 친구와 서울보다 따뜻한 도쿄에 사는 이모에게 안부 인사처럼 보내주었습니다.


눈 내리는 풍경 (사진 제공: 킨스데이)


네, 저는 아직도 눈을 좋아합니다. 하얗게 덮인 세상은 언제나 새롭게 느껴지거든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제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을 특히 좋아합니다. 원래 있던 길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길을 만들어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럴 때면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이 떠오릅니다. 물론 서울시 공무원인 제 친구는 눈 예보만 떠도 질색팔색을 하지만요.


눈에 대한 기억은 오래전부터 쌓여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설날 연휴의 밤, 친척들이 다 함께 할머니 댁에 모였습니다. 밤이 되자 어른들은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잠들었지요. 한밤 중, 함박눈이 쏟아지는데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집으로 걸어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졸리고 짜증이 났지만, 가로등 아래서 반짝이던 눈은 이상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잠시 멈춘 마법을 보는 것 같았지요.

그렇다고 눈이 늘 로맨틱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루마니아의 까라이만 산에서 내려올 때 눈보라를 만나 거의 죽을 뻔했거든요. 친구의 친구가 저를 거의 끌다시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눈은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걸요.

그럼에도 눈은 제게 사랑의 얼굴로도 남아 있습니다. 남자친구를 따라 눈 쌓인 공원을 코가 시리도록 열심히 걸었습니다. 눈 앞에 크리스마스 전등이켜진 5층 아파트 테라스를 가리키며 "너를 위해 준비했어,"라고 환영식을 해주는 데, 그때 느꼈던 그 감격은 아직도 제 마음 한 구석에서 반짝이고 있거든요.

워싱턴 DC에서 일하던 시절, 눈 예보 하나로 도시 전체가 멈추던 풍경도 떠오릅니다. 학교도, 정부 기관도, 회사도 셧다운. 그런 날이면 동네 친구와 신나게 눈싸움을 하고 집에 돌아와 신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었습니다. 눈은 그렇게 제 삶의 중요한 장면마다 때로는 특별하게, 때로는 평범하게 배경처럼 등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이 오면 누군가에겐 지옥입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덮을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하루가 시작되니까요.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 제설을 맡은 사람들에겐 특히나 말이지요. 재택근무를 하는 저로서는 그 고단함을 온전히 알지 못해 더 쉽게 눈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이기적일지도요.)


이렇게 돌아보니 제 삶에는 늘 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왜 눈을 좋아할까. 포근해서일까, 아니면 눈 위에 남는 발자국 때문일까. 그리고 질문은 자연스럽게 더 멀리 나아갑니다. 나는 이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사라질까. 누군가에게 길이 되는 흔적을 남길 수는 있을까. 탄소발자국 말고, 조금은 선한 영향력으로 남는 무언가를요. 아직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저는 여전히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듯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눈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에게 눈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그 위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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