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일

by 킨스데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정리했습니다. 연말과 연초 내내 거실 한쪽을 차지하던 작은 나무였습니다. 거실의 모든 조명을 끄면 오롯이 그 황금빛만 찬란하게 반짝였습니다. 귀찮은데 올해는 스킵할까? 이런 유혹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나무를 꺼내고 장식을 하나하나 다는 일련의 과정을 넘기고 나면 결과물은 생각보다 큰 만족감을 줍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지났고, 2026년 1월도 거의 끝나가니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보낼 시간입니다. 장식들을 하나씩 상자에 넣고 플라스틱 나무에 비닐을 씌워 창고로 옮겼습니다. 올해도 수고 많았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건네면서요. 그 자리에 공기청정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이제는 이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한 계절이 올 테니까요.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당당하게 빛나야 하고, 어떤 시기에는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는 걸, 크리스마스트리를 정리하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 차례가 아닐 때 욕심내지 않는 일, 하지만 내 차례가 오면 열정과 경험을 모두 꺼내 놓는 일.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지내던 시절, 친구 보스네 집에 초대되어 벽난로와 함께 거실을 한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장식과 캐럴, 음식, 그리고 겨울의 찬 공기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크리스마스가 완성되는 분위기였지요. 프로젝트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획, 소통, 추진, 마무리. 어느 하나만 앞서가도 어긋납니다.



어제, 작년에 함께 일했던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본사 담당자와 곧 다시 논의를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노트북을 열어 기획서를 업데이트해 전달했습니다. 원래 올해 1월부터 시작하고 싶어 작년 말에 정성과 시간을 쏟아부었던 기획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3월에 시작하면 다행이다 싶습니다. 결과는 차분히 기다려보기로 했어요. 다 때가 있다는 걸, 여러 번의 크리스마스가 알려주었으니까요. 지금은 불이 꺼진 트리처럼 보일지라도, 때가 오면 다시 제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그걸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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