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오르가니스트였던 큰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셨거든요.
피아노책이 든 가방을 들고
레슨을 받으러 가던 길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큰 엄마네와 함께 살던 친할머니가
가끔 쥐여주시던 과자 봉지의 온기도요.
그때는
'하논'과 '체르니'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음악 시간에
피아노 반주를 하면
점수를 조금 더 받기도 했습니다.
“소질이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집안 형편과 성적,
무엇보다 제 관심을 고려해
인문계를 선택했고
고등학교 2학년을 끝으로
피아노도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그렇게 피아노는
삶에서 조용히 퇴장했습니다.
그래도 거실 한켠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영창 피아노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죠.
조율되지 않은 상태로요.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악보와 함께 연주하는 영상들이
피드에 자주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한 번 쳐볼까.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 위에 덮여 있던
빨간 커버를 걷었습니다.
하얀 건반과
검은건반을 누르는 손끝의 감각.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는
정직했습니다.
손가락은 굳어 있었고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연습하지 않았으니까요.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선우예권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가 쏟아내는 소리는
단순히 재능의 결과가 아니라
연습의 시간, 실패의 시간,
혼자 버텼을 수많은 밤들이
겹겹이 쌓여 터져 나오는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고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구나.
프리랜서가 된 이후
일이 몰릴 때는 숨이 찼고,
일이 없을 때는
한가로웠습니다.
나는 이 시간에
무엇을 연습하고 있나.
지인 중에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는데
하루 3시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저를 돌아봅니다.
글쓰기 연습을 한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일정이 들어오면
쉽게 타협하지 않았는지.
피아노를 다시 치며 알게 되었습니다.
연습은
재능을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버티는 태도라는 걸요.
오늘도 완벽하게 치지는 못했습니다.
틀린 음도 많았고
손은 여전히 느렸습니다.
그래도
건반 앞에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삶이 조금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아노 연습을
삶의 기쁨이 될 수 있는
취미 하나로
다시 들였습니다.
이 연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연습이 사라진 삶보다
연습이 있는 삶이
조금 더 나를 믿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