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굣길이었습니다.
큰 가방을 멘 남학생이 앞서 걷는 친구를 부릅니다.
몇 번을 불러도 친구는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어깨를 잡고서야 친구가 돌아봅니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한 여성이
혼잣말을 하며 제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알고 보니 통화 중이었고,
귀에는 역시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었죠.
요즘 너무 흔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들이 늘 조금씩 불편합니다.
<경험의 멸종>의 저자 크리스틴 로젠은
AI 시대일수록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 소통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고 말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은 우리를 연결해 주지만,
동시에 서로를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효율을 좋아합니다.
전화보다는 채팅이,
오프라인 미팅보다는
줌 미팅이 편할 때가 많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편리하다”는 이유로 선택한 것들이
제 생활 방식을
조금씩 규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유선 이어폰을 씁니다.
올드해 보일 수도 있고,
굳이 그럴 필요 있냐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 귀에 무언가를 꽂고 있다는 게 명확해서
누군가에게 무례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 언제든 바로 벗을 수 있어
세상과의 연결을 쉽게 끊지 않기 위해
-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싶어서
유선 이어폰은
저에게 “나는 지금 듣고 있어요”라는 작은 신호이자,
“그래도 여전히 이 세계에 열려 있어요”라는 표시입니다.
대중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것.
취향을 고수하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프리랜서에게는 꽤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일도, 관계도, 삶의 리듬도
결국은 어떤 선택을 반복하느냐의 문제니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직도 고수하는 물건이나 습관이 있나요?
그건 단순한 취향일까요, 아니면 삶의 태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