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요

by 킨스데이

삐삐부터 챗GPT까지 경험한 세대라
스스로를 꽤 신기술 친화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커피 프랜차이즈 키오스크 앞에 서면
조금 작아집니다.


영화를 보기 전,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아가고 싶었습니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면
통신사 기프티콘에 남은 금액을
네이버페이로 결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앱을 켜고 바코드를 찾고
결제 화면을 넘기는 과정이
순간적으로 헷갈렸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손이 느려졌습니다.


괜히 화면을 몇 번 더 눌러보고
아는 척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습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직원 주문을 하고
그냥 체크카드로 결제했습니다.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예전에 박막례 할머니가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하시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웃으며 봤는데
이제는 남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금 무서웠습니다.


AI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발전하는데
나는 제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키오스크도 연습해야 하는 시대라면
앞으로 나는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프리랜서로 사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더 무겁습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없으니까요.


한 분야만 파는 것이 맞는지
여러 우물을 파야 하는지
커리어 호흡을 더 짧게 가져가야 하는지

생존 방식 자체를 계속 바꿔야 합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괜히 뉴스레터를 열어보고
책을 뒤적이고
유튜브를 넘기며

조금 조급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면
사람은 가끔
자기 속도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키오스크 앞에서 잠깐 멈췄다고 해서
내 인생까지 멈춘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느리게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여전히 '배우는 중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조금 긴장하고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