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공간과 비어 있는 콘텐츠 사이에서
DDP 건축투어를 하고 깨달은 점
누군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해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 공간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세금 낭비’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DDP 무료 건축 투어에 신청했습니다.
DDP 잔디 언덕 (사진제공: 킨스데이)
50분 동안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공간을 걷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건물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문이 없는 구조,
사방으로 열려 있는 동선,
연결을 강조한 철학.
이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의도가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수만 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단기간에 구현해 낸 기술력과 곡선을 만들기 위해 석고를 활용한 내부 구조였습니다.
“아, 이건 그냥 건물이 아니구나.”
그 순간 처음으로 인정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공허함도 있었습니다.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는데,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썰렁한 내부를 보며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하드웨어는 완벽한데,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
그리고 그 문장은
곧 제 자신에게 향했습니다.
집에 가기 전 두타몰에 들렀습니다.
한때 한국 패션의 중심이었던 동대문 상권.
하지만 매장은 너무 평범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옷들.
도전도, 실험도,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셰이크쉑에서 밀크셰이크와 감자튀김을 앞에 두고 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충분히 도전하고 있는가?
실험하고 있는가?
안전한 선택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감자튀김을 밀크셰이크에 찍어 먹으며
조용히 반성했습니다.
프리랜서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쉽게 나태해질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누가 관리해주지 않습니다.
누가 방향을 잡아주지도 않습니다.
결국 스스로를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퇴근 시간, 빽빽한 지하철 안.
제 앞에 앉은 한 남자가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무슨 영상을 보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하루를 웃게 만든 건
분명 콘텐츠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걷는 순례자와 비슷하다고.
정답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걷는 사람.
아마 그 길 끝에는
‘나만의 콘텐츠’가 기다리고 있겠죠.
혹시 여러분은
스스로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때 무엇이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는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