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지만 불편했다_데이미안 허스트 전시 후기
문화의 날이면 저는 늘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며칠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데이미안 허스트 전시를 보고 나왔을 때도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시장 안은 예상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작품 앞에 멈춰 섰고,
사진을 찍고,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지 못했습니다.
소머리와 파리 유충,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
그리고 다이아몬드 해골.
그것들은 ‘대단하다’기보다
조금 불편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뜨악했습니다.
대신 제 발걸음을 붙잡은 건
나비 날개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상하게 서늘했습니다.
생명을 재료로 만든 아름다움.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데이미안 허스트는
삶과 죽음, 종교와 의학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종종 논쟁적입니다.
동물과 곤충의 죽음,
대량 제품이 진열된 작품,
그리고 ‘작가의 손’이 아닌 시스템.
이 모든 것들이
예술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두려움으로 인한 발악일까요.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
이상하게 제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갔습니다.
나는 지금
너무 안전한 선택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나.
재밌는 건,
그 질문에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환갑이 넘은 데이미안 허스트는
다시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계에 맡겼던 작업을
다시 자기 손으로 가져왔습니다.
왜일까요.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그날 이후,
저는 아직도 이 질문을 붙잡고 있습니다.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살아볼 수 있을까.
여기서 질문 하나 드려볼게요.
“불편하더라도 의미 있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으신가요?”
예술이든,
일이든,
삶이 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