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박스 하나를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담겨서인지,
박스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작은 이모는 일본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동안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연락이 끊긴 채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라고 넘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2년 전,
낯선 번호 하나가 가족을 다시 이어줬습니다.
이모부의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습니다.
이모가 대장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카톡 영상통화로 처음 얼굴을 봤던 날,
엄마와 언니, 저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웃고…
정신없이 기뻐했습니다.
살아계셔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사실 이모와 엄마는
피를 나눈 자매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엄마가 이모의 ‘친정 식구’처럼
묵묵히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며
가족이라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릴 적, 이모는 우리에게 산타 같은 존재였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오던 사람.
아직도 버리지 못한 랑콤 메이크업 세트와
한가득 풀어놓던 빵들.
아마 시나몬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모가 그 당시 동경제과학교를 다니셨거든요.
그 시절의 저는 몰랐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마음이었는지.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산타가 되기로 했습니다.
엄마와 나, 큰 이모와 사촌까지
네 사람이 도쿄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는
많이 말라 있었고
머리는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슬퍼서가 아니라,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소포를 보냅니다.
전복내장 영양밥, 김, 멸치, 단호박죽,
기름지지 않은 간식들.
언니가 이집트 여행에서 사 온 초콜릿,
동생이 어디서 구해온 대통령 시계까지.
그리고 짧지만 마음을 꾹 눌러 담은 손글씨 엽서.
오늘도 소포 하나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국제우편 물류센터에 있네요.
배송 조회를 들여다보는 일이
요즘 제 작은 즐거움입니다.
올해는 제가 도쿄에 가려고 합니다.
프리랜서라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거든요.
이모와 다시 스시를 먹고,
미술관을 걷고,
블루노트 도쿄에서 재즈를 들으며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당연하게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아주 멀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자꾸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함께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함께해야겠다.”
여러분에게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혹은, 올해 꼭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요.
그 사람에게
작은 소포 하나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