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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Jan 16. 2024

친환경 캠핑타운의 미래를 보다

하늘이 예술인 친환경 캠핑 타운, 뉴질랜드 글레노키_Glenorchy

  글레노키에서의 2박은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끝없는 하늘이 캔버스 마냥 구름과 빛으로 예술의 향연이 가득한 곳이었다. 캠퍼들이 사랑하는 글레노키에는 비영리 형태로 운영되는 글레노키 에코 리트릿 호텔(Glenorchy Eco Retreat)이 있었다. 지금은 더 헤드워터스 에코 로지(The Headwaters Eco Lodge)로 이름이 바뀌었다. 에코 리트릿? 환경에 부쩍 관심이 높은 상태에서 지인의 추천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는 퀸즈타운에서 글레노키로 가는 미니 버스에 몸을 실었다. 탑승객 다섯 명 중에 중년의 엄마와 청년인 아들을 포함 한국인이 세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버스가 열심히 달리는 동안 옆에 앉아있던 백발 미국 할머니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IBM에서 오래 근무하다 은퇴한 엔지니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셨다. 하지만 백인 노인네 특유의 한국에 관한 무지함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어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 밖으로 향했다. 한참을 지나 글레노키에 도착했다.


글레노키 전경 © 2020 킨스데이

  

  대낮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 한적하고 깨끗하면서도 밝고 평온한 느낌의 그런 시골 마을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걸어갔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차량 없이 내 캐리어 바퀴와 도로가 내는 마찰음외에는 마을이 잠들어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아주 상냥하고 에너지 넘치는 직원의 안내로 체크인을 했고 내 방으로 직진했다. 퀸즈타운의 호텔과 달리 여기는 컨테이너를 모빌처럼 연결해 방을 만들었고 입구 방향을 틀어서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였다.


컨테이너로 지은 호텔 방 © 2020 킨스데이


  침실 역시 일반 호텔과는 색다른 느낌이었는데 직물이나 옷걸이 등 환경을 염두에 두고 업사이클링한 정성과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재활용 종이로 만든 옷걸이마저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에는 이 호텔의 환경 철학과 에너지 소비 규칙 등 여러 정보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컨테이너로 되어 있어 작고 답답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갖고 둘러보았는데 내부는 전혀 컨테이너 같지 않고 널찍하면서 서프라이징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느껴지는 그런 친환경스런 공간이었다.


호텔 방 내부의 모습  © 2020 킨스데이



  특히 친환경 화장실은 아주 독특했는데 변기 밑 지하 깊이 컴포스팅 시스템 처리가 되도록 연결해 뚜껑을 열고 변기에 앉아있으면 환기구에서 나오는 서늘한 바람이 엉덩이에 닿아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래로 배설물이 떨어지는 구조기 때문에 변기에 아무거나 버리면 안 된다는 당부의 메시지와 함께 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는 내용이 변기에 앉으면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있다. 기존 화장실 대비 물을 30만 리터나 절약할 수 있다니 이런 변기를 이용하는 것에 불편함 보다는 적응해야겠다고 자연스레 설득되고 말았다. 물을 절약하고 배설물을 정화시켜 주변 생태계에 이롭게 만드는 구조가 ESG 측면에서 호텔이나 캠핑장에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푸세식 화장실처럼 냄새가 나는 그런 후진 시스템이 결코 아니었다. 이런 실험 정신에 역시 뉴질랜드는 앞서있구나.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샤워 또한 정확히 5분 안에 온수가 칼같이 끊어지는 구조여서 긴 머리를 감을 때마다 바짝 긴장해야 할 정도로 철저히 물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와 호텔 시설을 둘러보기로 했다.  


친환경 화장실 © 2020 킨스데이

  

  공용주방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오븐을 포함해 세련된 조리시설과 조리도구들, 마트 냉장고처럼 내부를 볼 수 있는 사용자 중심의 구조와 구성이 돋보였다. 특히 커다란 조리식탁이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내 집 마련을 한다면 이렇게 넓은 식탁과 주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텔에 투숙하는 분들의 요리 재료 취향도 살짝 볼 수 있었는데 (이름이 붙어있어서) 신선한 채소와 과일, 치즈, 빵 종류, 와인 등이 냉장소와 테이블 위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조식이 제공되는 식당에는 밝은 색상의 원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청결하면서 안락한 느낌을 주었다. 공용 라운지에는 우드월에 편안해 보이는 가죽 소파 위로 업사이클링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서부영화에서 본듯한 거실 느낌이란 인상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밝고 즐거운 바이브가 느껴지는, 이런 바이브를 제공하는 고객 중심의 기분 좋은 곳이었다.


거실 전경과 액자와 가구로 꾸며진 한 쪽 벽면의 모습 © 2020 킨스데이
공용 주방의 모습 © 2020 킨스데이


   이번에는 실외로 발길을 돌렸다. 갈대류 비스름하게 생긴 조경 식물을 따라 걷다 보면 '솔라파크'가 나오는데 여기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태양광패널로 에너지를 저장해서 감당하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이 호텔은 넷제로 빌딩 인증을 받았고 기존 호텔 대비 50% 적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 자선가 부부가 의도적으로 "Regenerative Design"을 추구하며 이 호텔을 지었다고 하는데 이 부부의 놀라운 선구안에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었다. ESG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호텔 숙박업계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앞으로 호텔을 선택할 때 환경, 지속가능성을 선정 기준으로 고려해야겠다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퀸즈타운의 셔우드 호텔에 이어 글레노키의 에코 리트릿 호텔 역시 고객으로 머물면서 값비싼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만족스러운 탁월한 선택이었다. (참고로 Hotels.com에 따르면 이 호텔은 1박에 56만 원이다. ㅎㄷㄷ) 


  걸어 다니며 동네를 둘러보고는 테라스에서 컵라면으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했다. 새까맣게 어둡고 고요한 밤이었다. 구름 때문인지 생각보다 별이 보이지 않았다. 글레노키의 내일 하루를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솔라 가든 © 2020 킨스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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