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가 꼰대와 대화하는 방법

대표님, 왜 이러세요?

by 킨스데이

프리랜서로 시작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중간 레벨 팀 리더 / 매니저들의 리더십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업무다. 오퍼레이션을 담당할 파트너인 대표님과의 첫 번째 오프라인 미팅에 참석했다. 그들의 사무실로 방문했는데 말로만 듣던 코워킹 스페이스였다.


미팅 자리에서 우군과 적군 파악하기!

업무 경험이 부족했을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다. 미팅에서 내 의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이려면 나와 의견이 동일하거나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대일 미팅이면 어쩔 수 없지만 여러 명이 참석한다면 이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적군이 소위 '꼰대'일 때는 말이다. 비록 나는 프리랜서고 아직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지만 내 우군은 사전 미팅에서 내 의견에 동의를 해주신 (나를 스카우트하신) 교수님이다. 또 대화의 흐름을 지켜보니 저 꼰대 대표님(적군)과 일하는 두 팀장이 내 우군으로 보였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양쪽팀 막내는 우선 제외하더라도. 그래서 우선 우군의 의견에 열심히 귀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과 페인포인트를 내 제한적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해주고 솔루션을 제안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동의는 하면서도 내 의견을 부드럽게 밀어붙이는 강약 중강 약, 덩더기 덩더러러 ~ 유연한 대화 스킬

"대표님이 말씀하신 그 포인트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저렇게 고민해봤는데 제가 미국에서 리더십 프로그램 매니저로서 경험을 해보니 이게 문제더라고요. 이번에는 요렇게 해봤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프로그램의 목적과 기대효과를 리마인더 해서 정확하게 짚어주면서 내 의견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나 강력하게 예시를 들어가며 호소했고, 교수님의 동의와 그리고 상대방 팀장님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대화를 이끌었다. 미팅 참가자 7명 중 두 명이 여성. 그러나 결코 쫄지 않는 이유는 대외협력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미팅을 주도했던 경험이 유효했던 듯. 특히 이런 분위기에서 유연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려면 평소에 연습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이번 경우에는 무엇보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 저 두 팀장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이니까 웬만해서는 대표님께 양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표님 예우는 어느 정도 해드려야 했기에 예의 바르게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살짝 물러서는 양보의 미덕을 보여드리기도 했다. 팽팽히 맞서는 부분은 교수님이 나서서 정리를 해주시기도. 주거니 받거니 양측에 핑퐁이 오갔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히 내가 초반에 그렸던 그림의 모습이 나왔다. 며칠간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했고 미국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해봤으며 내가 바로 그 타깃이었기에 솔직히 나에게 유리한 시합이었다.


감정은 저리 가라, 이성적으로 대꾸하고 질문하기

꼰대의 특징은 자신이 꼰대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덩달아 흥분해서 맞받아치면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싸움으로 치닫을 확률이 높다. 화를 낼 필요는 전혀 없다. 감정이 상할 필요도 없다. 내 목표는 내가 원하는 그림으로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것이니.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그러나 사례 중심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목적을 명확히 해서 진정성 있게 대화를 이끌고 내 우군이 나를 백업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목소리로 내가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있게 유도하면 정리 끝!


두 시간 예정이던 미팅은 네 시간으로

장장 네 시간의 미팅을 끝내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속이 미슥거렸다. 그래도 고성이 오가지도 않았고 서로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프로그램 일정까지 정리가 돼서 한 결 홀가분했다. 최대한 허리를 굽혀 예의를 갖춰 인사드렸고 꼰대 대표님이 저녁 먹자고 제안하셨는데 단칼에 거절했다. 저래 눈치 없으셔서 어떻게 사업하시는지... 아래 직원들이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건 그들의 선택이니 내 알바는 아니니 패스. 내 나름 실력 발휘로 괜찮은 아웃풋이 나왔고 교수님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으니 다음에 계약서 쓸 때 조금 유리한 고지에 있을 수 있을까? 나 4대 보험 필요한데. 나 시간당 수당 꽤 비싼데... 그나저나 명함은 언제 주시 나요? 등등 교수님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꾹 참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 흠냐. 쿨은 밥 맥여주지 않지만... 다음 온라인 미팅 전에 꼭 교수님과 논의해서 업무 계약 조건을 확정해야겠다. 그때까지 일한 시간, 내용 잘 기록해놓는 수밖에... 에휴 4대 보험이 뭔지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란 쩝...


돌.아.보.면

사실 이 분은 찐 꼰대까지는 아니셨다. 다만 프로그램 타깃인 팀 리더의 눈높이 관점이 아닌 기업 대표의 일잘러 양성 관점으로 프로그램을 자꾸 바라보셔서 나를 짜증 나게 한 것뿐. 이제는 모든 조직들이 개개인의 커리어 성장과 리더십 개발, 업무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바로 퇴사를 할 경향이 크다. 꼰대 대표님, 현실 파악 좀 하셔야 할 텐데. 그런데 채용 계획 있다며 나한테 사람 추천해 달라 신다. 저런~ 저런~노노노!


작가의 이전글코로나 시대에 퇴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