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부모님 집에 기생충 살이 하게 된 사연

초보 프리랜서의 눈치 9단 얹혀살기

by 킨스데이


6월 27일 전세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6월 23일에 회사 업무를 종료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3월 중순에 짰던 내 계획에는 부모님 집으로 잠시 들어가서 맛있는 집밥을 먹다가 7월 2일에 뉴질랜드로 샤라락~ 이주를 간다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 했던가. 코로나로 인해 7월 9일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뉴질랜드의 국경은 굳게 닫혀있고, 나는 졸지에 부모님 집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되었다. 다행히 작은 방이 하나 비어있어 내가 차지했다.


기생충살이의 장점 다섯 가지 그리고 단점


1. 집밥으로 외식비 절약

부모님 집에는 항상 밥과 반찬이 있다. 성수동에서 자취할 때는 배달의 민족 VIP 였건만 이젠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필요가 없어졌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 외식을 했었는데 이런 비용도 줄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에서 여자 주인공이 ‘배가 고파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는 대사가 기억난다. 나 역시 ‘집밥이 고파서’ 부모님 집으로 5.5년 만에 컴백한 셈이다. 왠지 살찔 것 같아 두렵다!


2. 조용한 동네. 계절이 느껴지는 나무들

성수동은 힙스터의 성지였지만 집 앞에 지식산업센터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침 7시 이 전부터 매일 심지어 일요일까지 공사를 해대는 통에 재택근무하는데 창문을 열 수 조차 없었다. 돌아보면 4년 내내 이비인후과를 달고 살았다. 내 추측이지만 공사로 인해 검은 먼지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호흡기에 악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부모님 집은 아파트촌이라 동네가 조용하다. 아침에 새소리에 잠을 깬다. 나무들이 많아서 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여름의 싱그러운 녹색 나뭇잎이 가득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심신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3. 소파와 TV가 있어 최신 트렌드 섭렵

오피스텔에 살면서 소파에 누워 TV 보던 시절이 참 그리웠다. 소파도 TV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케아 일인용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서 네이버 동영상 클립을 보던 시절 안녕~ 이젠 부모님 집에서 호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짐 안 풀고 소파에 늘어져 TV 보며 빈둥댔다고 언니에게 욕먹은 건 TMI) 리모컨도 내 차지다(물론 엄마의 드라마 시청은 무조건 존중해드려야 한다)


4. 베란다에서 뽀송뽀송 빨래 건조

내가 살던 오래된 오피스텔에는 베란다가 없어서 빨래를 거실에서 말려야 했었다. 부모님 집에는 베란다가 있어서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매일 말릴 수가 있다. 통풍고 잘 되서 기온도 2도 정도 낮은, 에어컨을 틀 필요가 없이 서늘하다. 코로나로 인해 미래의 집을 디자인할 때 베란다가 다시 부활한 모델이 인기라는데. 베란다를 터서 거실을 넓게 공사하는 게 한 때 유행이었지만 앞으로는 베란다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세탁기가 커서 이불 빨래도 가능한 것은 TMI :)


5.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덜 외롭다.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인간은 역시 더불어 살아야 하는 동물이던가. 지지고 볶아도 가족이 있으니 무언가 든든하다. 안정감이 느껴진다. 밥도 같이 먹고 TV도 같이 보고. 택배 오면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청소와 빨래도 같이 한다. 소소한 일도 같이 의견을 모아 결정한다. 당근 마켓에 엄마 물건을 대신 팔고 수수료도 받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의 사랑을 맘껏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개인 사생활 보호는 포기

부모님 집에 들어오니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사라졌다. 집에 있을 때 옷차림도 신경 써야 하고 집안을 어질러도 안된다. 뉴질랜드에 있는 남자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할 때도 방문 꼭 닫고 조용조용 대화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아침형 인간들과 동거하니 저녁형 인간으로서 느끼는 애로사항도 많다.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스타일인데 아침 일찍부터 씻는 소리, 아침식사 준비하는 소리 등 숙면을 취하기 쉽지 않다. 밤늦게 꼼지락 거릴 때는 눈치가 보인다. 아무튼 그렇다. 물론 기생충인 내가 선을 넘지 않도록 잘 맞춰야겠지. 왜 적정 나이가 되면 독립을 해야 하는지 다이유가 있는 거다.


하루빨리 뉴질랜드 국경이 열리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한다. 너무 오랫동안 이 집에서 기생하지 않기를. 서로에게 좋은 추억만 간직할 수 있기를. 시원한 밤 바람에 잠이 오지 않아 브런치에 몇 자 끄적여본다. 토요일 출근하는 분이 내 아침 잠을 깨울 것이라 확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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