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프로젝트, 가볍고도 무거운 의미
8년 전이었나. 9년 넘게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에서 마케팅과 브랜드 매니지먼트 관련 업무를 해오다 지쳐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명함이 주는 안정성보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신나게 하고 싶었다. 마침 같은 동네에 살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강원도 원주의 한라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경영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넥스트 스텝을 고민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했다. '그래도 훌륭한 마케터로 성공하고 은퇴하고 나면 그때 좋은 일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내게 학생들은 "Why not now?"란 큰 한 방의 질문을 날렸다. 그렇지. 기다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해보는 게 마땅했다. 내가 무슨 마케팅 구루도 아니고, 평생 마케팅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정당한 이유도 딱히 찾지 못했다. 그래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실행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마케터 정신!) 지금은 없어진 아산 나눔 재단의 'Frontier Fellowship Program'에 35세 나이 제한 턱걸이로 선발되어 미국의 비영리 기관에서 1년 반 동안 리더십 역량 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에 돌아와 비영리 섹터로 커리어 전환을 감행했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담당해 국내외의 체인지메이커와 사회혁신가들을 만나 연결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 4년 뒤 퇴사를 결정했다(그렇다. TMI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 첫 번째 프로젝트는 2011년 전문가 프로보노 단체 Social Consulting Group(SCG) 회원으로 1세대 사회적 기업 보청기 회사 '딜라이트'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이었다. 시작한 계기는 모교 신문 00 투데이를 읽다가 SCG 대표의 인터뷰를 보고 그에게 바로 이메일을 보내 덜컥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다. 회원이 되자마자 그 대표는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딜라이트 컨설팅 프로젝트에 투입시켰다.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는 오래전에 모 제약회사에 합병되었고, 함께 했던 멤버들이 흩어졌지만 당시에는 유능한 대학생 3명이 모여서 창업한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 마포구 신수동 주민센터에 모여 재능기부 형태로 두 명의 프로보노 컨설턴트와 함께 2개월 정도 진행했으며 오프라인에서 미팅을 하고 딜라이트에서 숙제를 제출하면 검토하고 논의하는 형식이었다. 내용은 주로 유통 채널과 온라인 마케팅 전략과 실행 등에 관한 자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에서 경험했던 마케팅이 전부였던 터라 사회적 기업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없이 투입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회적 기업 담당자에게 처음부터 3개년 사업 계획을 보여달라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그때 함께 했던 딜라이트 출신 친구는 나와서 새로운 창업을 해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누군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은 이 프로젝트는 나중에 미국에서 일하고 싶은 분야를 선택할 때 'Social Entrepreneurship'을 선택하게 하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내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여기서 만났던 분의 강력한 추천으로 관련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조직에 취업도 할 수 있었다. 이후 또 다른 프로보노 컨설턴트와 대학생을 위한 제1회 SCG 아카데미를 기획, 운영을 했다. 그리고 나서 SCG와는 손절을 했지만 나에게 Social Entrepreneurship과 프로보노 활동에 대한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이 짧은 경험이 내 커리어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벤트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그래서 순간순간 만들어가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점들이 모여 어떤 선을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므로.
[첫 번째 프로젝트 요약]
계기: 프로보노 단체에 회원 가입 후 투입
기간: 2011년 2월 ~ 4월(2개월)
대상: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
요청 내용: 연간 계획 목표 세팅 / 온오프라인 채널 별 마케팅 및 PR 전략 (제품/가격/프로모션 등)
프로젝트 성과: 채널별 / 월별 매출 목표 세팅, 온라인 리뉴얼에 따른 홈페이지 Revision, 리뉴얼 론칭 프로모션 기획(기존/신규), 블로그 운영안, 오프라인 오픈 우선순위 결정, 임직원 지식 함양을 위한 전문 교육 제공(리서치, PR, 온라인 마케팅, 오프라인 이벤트, CSR), 브로셔, 포스터 등 안내물 내용 구성 및 디자인 조언, 임직원 KPI 세팅 조언
내 역할과 책임: 마케팅 & 브랜드 매니지먼트 리드 (PR 전문가와 이커머스 전문가와 함께 3명이 팀 구성)
형태: 프로보노 재능 기부
의의 : 돌이켜보면 회원 가입하자마자 이렇게 바로 컨설팅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다니던 회사에 대한 신뢰도로 덕을 본 것 같음(예전에는 소위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마케팅 역량이 뛰어난 던 곳임). 덕분에 Social Entrepreneurship과 프로보노란 신세계에 첫 발을 내뎠고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음. 향 후에 미국에서 관련 분야의 커리어 선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 취업하는 데에도 이 프로보노 단체에서 만난 분의 도움을 크게 받음.
여기서 잠깐!
프로보노는 라틴어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서비스를 활용하여 무료로 공익 차원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을 의미한다. 본래 미국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공하는 법률서비스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최근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공익을 위하여 자신의 전문적 지식, 기술, 경험 등을 기부하는 활동 그러한 활동을 실천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출처 : 사회공헌센터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