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망한 두 번째 프로젝트의 교훈
프로젝트가 매번 반드시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도로 어떻게 진행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한다 해도 실패할 수 있고 아주 우연찮게 큰 성공을 맛보기도 한다. 나도 일하면서 여러 차례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식품기업에 다닐 때 신제품을 출시해서 여러 번 말아먹었고 종이회사에 다닐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남아있던 분들이 뒤치다꺼리를 하셨을 거라 생각하니 죄송할 따름이다.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 탈락!"
내 인생 두 번째 프로젝트는 2012년 아산 나눔 재단에서 진행한 ‘프런티어 프로그램의 창업 부분 지원’에 관한 것이다. 당시 나는 글로벌 종이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대기업을 다니던 친구와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 거리를 물색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창업이 됐든 무엇이 됐든 뭔가 목표와 결과물이 뚜렷한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마침 해당 공고를 접했고 주저 없이 도전해보기로 결정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하던 중 워킹맘의 돌봄 육아 서비스를 통해 동네에 계신 어머니들을 연결해주는 “워킹맘 프리 플랫폼 사업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당시 첫 번째 조카가 태어나고 워킹맘인 동생이 육아를 도와주실 분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서류 통과 후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관 앞에 섰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났더니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입을 열었다. 코멘트는 심플했다. 헝그리 정신이 없다는 것. 앞 팀에서는 창업을 위해 이미 퇴사를 했는데 우리는 버젓이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12년 당시 창업에 대한 인식이 이랬다. 단칸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화가 아름답던 시절 이어서인가. 물론 지금도 그런 경험을 창업스토리로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물론 그분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당시 우리는 창업은 “충분한 준비와 조사, 탐색과 실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친척 분들 중에 사업하다 망한 분들이 좀 계셔서 유난히 내 경각심이 더 높았을 수도 있다. 중소기업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30세 미만 창업 5년 생존율 16%대였다. 적어도 우리 생각은 그랬다. 그래서 심사위원의 코멘트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탈락했다. 선발되면 북유럽의 육아 시스템에 대해 현장 방문 조사를 제대로 해보려 했었던 우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그 후에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그 창업 아이디어도 접게 됐다.
3년 뒤, 이런 아산 나눔 재단과의 인연으로 나는 해당 재단의 프런티어 펠로우로 선정되어 미국에서 비영리 기관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14년 여름, 아주 우연하게 아산 나눔 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해당 프로그램 펠로우 모집 공고를 발견하고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커리어 섹터 전환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두 번째 프로젝트의 실패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패는 성장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
실리콘밸리에서는 “두 번 실패한 창업가가 투자 1순위”라고 한단다. 2021년 지금의 창업 생태계에서는 실패가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닌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물론 그때 선발되어 북유럽에 다녀왔다면 내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북유럽 벤치마킹 시장 조사를 통해 창업을 하고 육아 문제를 해결하는데 고군분투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폐업을 할까? 요즘 빠른 속도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누적 투자 111억 원에 빛나는 돌봄 서비스 자란다와 아이 돌봄 매칭 플랫폼 누적 앱 다운로드 수 30만을 돌파한 째깍악어를 볼 때면 여러 감정이 묘하게 교차한다. 나는 정말 그 헝그리 정신이 부족했던 걸까? 최근 창업을 했으니 나름 도전정신과 열정은 내 안에서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이렇게 작은 점들이 하나씩 모여서 선이 되고 면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