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더우먼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가 있다. 눈 앞에 쌓여있는 엄청난 장애물 사이를 헤치고 결승선을 향해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야 할 때. 작년 10월에 개최한 글로벌 컨퍼런스 프로젝트가 내게는 그런 프로젝트였다. 글로벌 행사 기획과 운영에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쉽게 맡았다가 두 달 동안 영끌해서 나 자신은 까맣게 타버린 그런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고생한 만큼 그만큼 배움과 교훈도 컸고, 내 강점과 약점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프로젝트 기회들도 생겼고 주변에서 인정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동안 잠수를 타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될까?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의 관점으로 이 프로젝트를 한 번 분석해 보고자 한다. 참고로 컬렉티브 임팩트는 2011년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에서 존 카니아 (John Kania)와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섹터를 초월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복잡한 사회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5가지 성공 조건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 모델이다. 성공 조건은 첫째,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둘째, 공유된 측정 체계가 필요하고 셋째, 이해관계자 간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히 구분되어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하며 넷째, 지속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다섯째, 전체 관리를 위한 Full time 중추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글로벌 컨퍼런스의 주제가 컬렉티브 임팩트였다.
행사와 관련된 숫자는 아주 훌륭했다. 온라인 시청자 수, 전체 조회수, 만족도 조사 등등 누가 봐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컬렉티브 임팩트 관점에서의 컨퍼런스 기획 및 운영 관련 제 점수는 요~ 중하급이었다. 행사는 디테일이고 항상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1) 공동의 목표 설정
이번 컨퍼런스를 위해 여러 이해관계자가 준비 과정에 참여했는데 아쉽게도 다 같이 모여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기획은 우리 팀이 담당했고 운영 때 다른 두 팀이 참여하면서 세 팀이 '동상이몽'이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다 함께 모여서 이 컨퍼런스의 목표가 무엇이고, 성공했을 때의 장면이 어떠한지 함께 그려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해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업해도 배가 산으로 가지 않는다.
2) 측정체계 공유
공동의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컨퍼런스에 대한 KPI(Key Performance Index) 또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준비 과정에서도 잘하고 있는지 파악이 어려웠고, 컨퍼런스가 끝나고도 제대로 평가를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2개월간 인텐시브 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물리적 시간의 부족으로 미처 챙기지 못했다고 변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컨퍼런스의 KPI가 무엇이고, 어떻게 효과를 측정할 것인지, 우리의 goal이 무엇인지 사전에 확립하려고 한다.
3) 상호협력 강화 활동
서로 다른 섹터의 세 팀이 모였는데 각자의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부분이 참 아쉽다. 돌아보면 실무자 간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아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게 컸다. 여기에는 조직 간의 보이지 않는 파워,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 돈이 힘이라는 인식 등등 한마디로 팀워크가 생기기 어려운 상황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인텐시브 한 프로젝트일 때에는 특히 유연성과 전문성, 책임감으로 무장한 팀과 손발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가. 그리고 내 리더십을 철저하게 냉철히 돌아보게 됐다. 올해 컨퍼런스 때에는 부디 컬렉티브 임팩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4) 지속적인 의사소통
정말 지겹도록 했을 것이다. 밤낮, 주말 상관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진도를 뺐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정과 감사, 독려가 부족했던 것 같아 깊이 반성한다. 다들 힘들어서 예민할 텐데 총괄 기획자로서 내가 좀 더 포용적인 리더십으로 팀원들을 감싸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투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중추조직 유무
실제로 중추조직은 내가 이끄는 팀이었다. 이 컨퍼런스의 A to Z를 총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참 버겁게 일을 진행해야했다. 두 달 간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인텐시브한 프로젝트의 경우, 중추조직이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힘을 실어주거나 이를 중심으로 헤쳐 모이며 동시다발적으로 업무를 진행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담당자가 마~이 피곤하다.ㅠㅠ
나는 원더우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정한 컬렉티브 임팩트 리더가 되고 싶다.
결과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원더우먼이 아니었고,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팀원들과 타 팀과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를 위해 리더십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게 체험할 수 있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믿고 맡겨주시고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컬렉티브 임팩트에서 말하는 시스템형 리더십 스킬을 키우고자 경청, 피드백, 인정과 감사 등을 배울 수 있는 코칭 수업을 열심히 듣고 연습하고 있다. 여러 섹터를 아우르는 폭넓은 관점과 유연성, 존중과 배려의 커뮤니케이션, 냉철함과 성실함, 문제해결능력과 책임감,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유머가 있는 그런 컬렉티브 임팩트 리더가 되고 싶다. 올해 컨퍼런스는 작년보다 나은, 한 뼘 더 성장한 컨퍼런스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