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대화 04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는 순수하다?

by 수진

B : 요즘 SNS에서 핫한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 읽어봤어?

S : 나는 어린이가 싫어.

B : 어린이 책 편집자가 쓴 책이야. 한 권 사줄까? 너도 두 아이의 엄마잖아.

S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아니 무서운 게 어린이라고 생각해.

B : 왜?

S : 그럼 너는 어린이가 왜 좋아?

B : 귀엽고, 순수하고, 예쁜 시절이잖아.

S : 나는 어린이가 사악하다고 생각해. 대부분 어린이니깐 악의 없는 무구한 장난이나 말들을 한다고 믿지.

B : 사악하다니, 어린이는 무구해.

S : 난 내가 어린이일 때 꽤나 우울한 어린이였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린이들도 어린이라는 타이틀을 방패삼아 유해한 장난들, 말들을 쏟아냈어. 그럼에도 악의가 없다고 믿는 어른들로 인해 너무 쉽게 용서가 되었어.

나는 절대 어린이로는, 그 세계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B :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S : 음... 나 어렸을 때 전학을 세 번이나 다녔어. 아홉 살 때 전학을 갔는데 그 학교에서 짓궂은 장난을 많이 당했어. 한 예쁜 아이가 다가와 ‘너 이 누렇다’하고 예의 없고, 뾰족하게 말하는 거야. 처음 본 날. 나도 ‘네 이도 누래’라고 받아쳤지. 근데 그 앤 반장인거야. 선생님이 자율학습 하는 동안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칠판에 적으래. 아홉 살은 신나게 떠들 수 있는 나이지. 근데 그 반장이라는 아이는 정작 떠드는 애 이름을 적지 않아. 전학 와서 만만한 나 같은 애나 평소에도 소심하고 조용한 애 이름을 적지. 그게 정말 어린이의 무구한 행동일까?

B : 흠... 아홉 살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한 선생님이 문제가 아닐까? 아홉 살이 공정함을 알까?

S : 그래도 꽤나 치사하고 야비하지. 한번은 교실 뒷문과 앞문을 아이들이 합심하고 열어주지 않았어.

B : 어떻게 했는데?

S : 집으로 가서 아빠를 데려왔어. 근데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도 문을 잡지 않고 있더라. 나는 그 아침에 집과 학교를 두 번 왕복했고, 아빠는 내가 학교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아이라는 사실에 속상해하면서 동시에 야무지지 못한 나를 탓했지. 선생님도 짧게 그런 행동에 대해 나무랐을 뿐이고.

B : 못됐네. 진짜.

S : 못됐지. 진짜. 어른들은 어린이니깐 그런 실수들을 할 수 있다고 늘 용인했어. 어린이가 유해하지 않다고 믿었지. 그들은 늘 무해하고 무구한 존재라고 여기는 게 난 싫어.

B : 그럼 어린이는 유해해?

S : 어른과 다르지 않아. 유해하기도 해.

B : 냉정하네. 너도 여덟 살 어린이를 키우잖아.

S : 내 아이도 포함이야. 내가 부모로서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 줄 알아?

B : 뭔데?

S : 나는 뉴스를 보면서 무수한 사건들을 보면서 생각해. 내 아이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면 어쩌지? 옳지 않아도 좋으니 차라리 방관자였으면 좋겠다고. 학교를 다니다보면 어떤 사소한 사건에는 딱 세 종류로 사람이 분류돼.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영웅은 없어. 그저 방관자를 선택했으면 좋겠어. 아주 간혹 나타나는 영웅도 싫어. 그 다음 타깃은 그 영웅이 될테니깐.

B : 무탈하게 자랄 수도 있는데, 너무 큰 비약 아냐?

S : 중학생 때 장래희망 적어오라는 종이를 학교에서 나눠줬어. 아이들과 부모는 각각 장래희망을 적어. 보통 선생님이나 의사, 패션디자이너 등 여러 멋진 직업들이 다 나열되지. 근데 한 친구의 부모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적었어. 그땐 그 말이 시시하다고 생각했어. 특별한 꿈을 꾸는 나이니깐. 근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것 같아. 최대한 무해한 사람이 되는 것. 세상에도 타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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