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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Sep 21. 2019

공기업 직장인 이야기

4년차 직장인의 소회

나는 공기업을 다니는 4년차 직장인이다. 회사생활을 이정도 하게 되면 조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정도 사람마다 결정이 되는 것 같다. 동기들 중에서도 회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유형이 갈리는 연차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나는 개인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자존감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직업의 의미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포션이 굉장히 높다고 믿으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면 쉽게 흥미를 잃는 타입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 워커홀릭은 아니고, 조직생활 자체가 결코 이상적인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월화수목금으로 이루어진 평일과 단 2틀로만 주어지는 자유로운 주말은 사회가 만들어낸 관습일 뿐이며, 그 틀을 따르는 것이 결코 개인으로 자립하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개인적 특수성을 감안하고,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즉 엄청나게 비판적인 어조로 쓰여질 글이라는 소리.


1. 공기업은 다방면으로 비난을 받는 조직이다.

보통 공기업은 네이버든 다음이든 어느 포탈을 가든 공격의 대상이다. 보통 사회적 비판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리기 마련인데, 보수가 지지하는 곳은 진보진영에서 비난받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비슷하다. 하지만 유일하게 공기업은 좌우를 막론하 까이기 위해 태어난 집단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특수성인지, 전세계적인 성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되지도 않은 유언비어와 낭설로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주로 까이는 패턴은 이와 같다. '정년이 보장되어 일도 대충하고 책임감도 없다.' '맨날 적자 투성이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 '세금으로 운영되면서 국민에 대한 봉사의식이 없다.' 보통 이러한 비판은 공무원과 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조직에 대해서 유난히 엄격한 것 같다.


일단 정년이 보장되어 일을 대충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공공기관은 업무의 패턴이 비슷하고 대부분 법률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인 업무개선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임원들의 경우 사장들은 대부분 정치권의 낙하산인 경우가 많고, 그들은 사장이라는 책임보다는 정치인으로의 커리어 중 하나라는데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로 보여지는 결과물을 원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혁신은 단기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특히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경우 더욱 그런 성향이 심한데, 사장의 임기는 길어야 2년이므로 결국 보여주기식 예산사용과 언론 홍보에 대부분의 비용이 나가게 된다. 정권의 바뀜에 따라 공기업의 정책또한 갈대처럼 바뀌기 때문에 국민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전기요금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통행료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가 없앴다가, 이러니 얼마나 줏대없는 조직으로 보이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공공기관의 내부적 결정이 아니라 다 정부의 기조에 따른 것이다. 근데 욕은 공공기관이 먹는다. 솔직히 억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거고, 니네들 일 대충하는거 맞잖아 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근데 생각해보라. 공기업과 사기업의 차이는 바로 경쟁의 강도에 있다. 애초에 기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성향을 고려하는데 경쟁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오는곳이 공무원 아니면 공기업이다. 게다가 공기업은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일이 몰리는 구조이고, 그에 반해 감사는 굉장히 까다로워 일한만큼 감사에 걸릴 확률도 높다.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진다. 스티브 잡스나 베프 제조스가 온다 한들  공기업에서는 아이폰을 만들거나 물류의 혁신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새로운 업무개선이 곧 감사의 대상이 되고, 징계의 대상이 되는데 누가 모험을 하려 하겠는가?


2. 최악의 조직문화를 가졌다.

사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는 그 반대의 경우보다 흔하다. 이것은 요즘의 사회적 트렌드에 따른 변화도 있겠지만 애초에 공기업의 채용시스템은 공부벌레처럼 도서관에서 틀어박혀 앉아 열심히 암기할수록 유리하다. 반면에 사기업은 여러 대외경험이 많을수록 좋고, 영어점수나 학점처럼 정량화된 스펙보다는 정성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것들이 중요한것 같다. 이러하니 공기업을 준비하던 취준생의 경험 루틴하고 발전없는 업무를 수행하던 공기업 경력이 더해져  공공분야의 전철을 밟은 사람들은 사기업에서는 원하지 않는 인재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잦다. 당연히 이직 어렵다. 그에 반해 사기업을 다니던 사람들은 태초의 명석함(?)과 총기를 발판삼아 각잡고 1년 공부하면 어느 공기업이든 합격선에 가까워 진다. 공기업이 사기업보다 좋아서 이직자가 많다는게 아니라는 소리.(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기업도 A매치 금융공기업들은 스펙마저 쩔더라)


잡소리는 이러하고, 아무튼 안정지향적 성격형의 신입사원에 과거 공공기관이 인기없던 시절 스펙이 떨어지는 기존세대들이 더해져 그야말로 고리타분하고 수직적인 기업문화가 탄생한다. 여기에 정부방침에 그대로 따라야 하는 구조적 문제도 있겠다. 의전과 명령에 의한 일이 최우선이 되고 효율이나 창의성은 먼나라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기업이 순환보직(지역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시스템을 택하고 있어 특정 업무를 맡는 기간이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숙련되지 않은 대리 과장급 두 세명이 모여 1년 동안 대단한 성과를 이룰수 있을까 ? 결국 그럴듯한 방침하나 만들고, 적당히 실적을 조작한 뒤 포장을 하여 엄청난 성과로 홍보한다. 통계적 조작은 필수이다. 가령 어떤 게시글의 이용자가 10명이었는데 15명으로 늘었다면 50% 상승! 이라는 기적의 수학을 볼 수 있다.


이에 더해져 승진은 꽤나 치열한 편인데, 물론 어느 기업마다 정치질은 있겠지만 여기는 그야말로 상상이상이다. 얼마나 심하면 이런말이 생겼겠는가? '의전은 지나친 정도가 없다.' 어느 공공기관이든 승진시즌이 되면 눈물의 똥꼬쇼가 펼쳐진다. 술자리마다 따라다니며 그야말로 기생 빙의하여 술잔을 따르고 술잔치를 벌인다. 심사자들은? 그 어마무시하신 심사권으로 황제모드를 무려 한달넘게 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심사대상자들은 업무의 효율이나,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사를 위한 일만을 추구하게 된다. 국민과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공기업의 가치가 변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승진하여 올라가는 사람이 그러하니, 승진한다고 사람이 바뀌겠는가? 누구나 그렇듯이 보상심리는 당연한 것이다. 좋은 노동자가 승진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아첨과 정치에 능한 사람이 승진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3.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도태되어 간다.

신입사원부터 느끼는 것들이다. 공공기관은 개인의 발전이 요원하다. 대부분의 일이 행정적이며, 기술직들도 관리 감독이 주가 될 뿐, 전공을 이용하여 개발을 하지 못한다. 점점 지식은 줄어가고, 시대는 변해가는데 사람을 부리는 일에만 능숙해지고, 쓸데없는 보고와 회의, 실적을 조작하는 법만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답인 조직이기도 하다. 환경은 강력한 요소라 정말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그냥 이런 시류에 휩쓸려 갑을병정 중에 하나가 되어간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합리화의 동물이라 이런 삶이 나쁘지 않다고 자위하게 된다. 처음에 경멸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내 미래가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90년대생들이 입사하는 요즘,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굉장히 늘어났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부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공기업은 사람을 좀먹는 조직이다. 안정지향은 결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지 않나 싶다. 안정지향과 도태는 전혀 다른 말이다. 안정과 발전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너무 길게 적은것 같은데, 이게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외에도 너무나 많지만 글을 써 내려갈 수록 힘이 빠지기에, 그만 해야겠다. 물론 회사를 돈버는 곳으로만 인식하고, 퇴근 후나 주말의 여가를 즐기는 분들도 많다. 틀리다는게 아니다. 다만 과연 월화수목금 9~18시의 시간을 회사에 있으면서 그 외의 나머지 시간만을 내 인생이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 뿐이다. 경쟁이 당연시 되는 사회다보니 공공계열의 인기가 높아지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공무원시험에 수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문화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안정을 보고 여기에 뛰어들면 언젠가 엄청난 고뇌에 빠지는 날이 온다.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내 인생에 오답은 있었더라. 나는 지금 4년째 오답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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