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by 김대식


오늘은 미용실에 간다. 머리를 자른지 꽤 되었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머리를 자르러 간다는 말을 하기에,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여러 지인들이 내일 머리를 자르러 간다고 하는 말을 우연히 내가 들은 덕에,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머리를 잘랐던 저번 적에 말이 많은 남자 미용사를 만나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그 미용실에 가기로 예약을 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알람에는 비슷하게 저항했지만 알람을 더 일찍 맞춰둔 덕택에) 미용실에 약속시간에 맞게 도착했다. 약속에 늦을까 나름 서둘렀던 나의 열의와는 달리, 약속시간에 내가 예약했던 남자 미용사는 거기에 없었다. 여자 미용사 한명이 거기에 있었고, 그녀는 나에게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혹시 저 여자 미용사가 내 머리를 자르게 되는 것일까,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나름 이 미용실을 골랐던 이유가 과거의 남자 미용사의 존재였던 탓에 무엇인지 모를 꺼름칙함이 들기도 한다. 처음 눈에 든 의자인, 유일하게 조금 빠져나와 있는 의자인, 남이 짐을 놔둔 의자에 앉을까 잠시 생각을 했다가 그러지 않기로 생각하고 그 옆옆 의자에 앉았다. 의자에 앉은 그 순간 남자 미용사가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사실 저번에 자른 그 미용사인줄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저번에 머리를 자른 것은 자취를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았던, 지금으로부터 최소 7개월은 된 이야기이기에 그가 그인지 모른다. 다만 그때도 미용실에는 남자 미용사 한명과 여자 미용사 한명이 있었고, 지금도 남자 미용사 한명과 여자 미용사 한명이 예약 가능한 미용사 목록에 있었으니, 그저 그때와 똑같았을 것이라 짐작하고 만 것이다. 그가 나를 의자로 이끈다. 앉으라 한 후, 내가 어떤 머리를 원하는지 묻는다. 나는 그저 내 머리를 정리해달라고 말한다. 사실 머리스타일 자체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 내가 미용실에 온 동기는 주변 사람들의 미용실 방문이었고, 그 이후 생각해보니 머리 자른 후가 오래되었다는 걸 깨달아서였으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 대한 불안인, 옆머리와 뒷머리가 뜬다는 말을 덧붙힌다. 미용사는 이내 알겠다고 , 그렇다면 옆과 뒤의 숱을 크게 치는 것이 좋겠다고 짧게 말한 후, 머리를 자르는 것에 몰두한다. 아무래도 내가 저번에 만났던 그 남자 미용사가 아닌 것 같다. 그는 정말 쉴새 없이 떠들었고, 나는 그의 말에 적당히 대답하며 즐거워 했다. 그의 미용에는 도저히 심심할 틈이 없었고, 나는 지루하지 않은 채 미용을 끝냈다. 그는 끊임없는 자극을 일으켰고, 나는 끊임없이 반응했다. 오늘의 남자 미용사는 도저히 그러지 않았다. 아무말 하지 않은 채, 그저 내 머리를 보고, 잡고, 없애 나갈 뿐이었다. 오늘의 그가 과거의 그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가 어떤 일로 (내가 드문드문 떠올리는 흐릿한 심상에 가까운 그 과거의 기억이 맞다면) 더 동글해지고, 안경을 끼고, 과묵해졌을지는 알 수 없을 따름이다. 정말 다른 사람일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된 건지, 그저 궁금해할 뿐이었다. 서걱서걱, 창의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저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진부한 가위소리를 따라서 그는 내 머리를 과묵히 잘라갔다. 끊임없이 자극/반응했던 과거의 기억에 비하면 심심했을지 몰라도,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은 아니었다. 그저 머리를 자르는 일이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러하지만, 과거의 기대에 맞춰 미용실에 온 나로서는 명시적으로 그런 감상이 떠올랐다. 서걱서걱을 감상했다. 그와 같이 나도 바뀐 것일지 모른다. 조용한 미용실은 하나의 특징을 가진다는 걸 깨닫는다. 가위 소리를 듣고, 그 반복적인 소리를 들으며, 혼자 생각이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거울의 내 모습이 바뀐다. 생각과 심상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궁금증들이 떠오른다. 원래의 기대라면 시끄러웠을 미용사에게 응당 했어야 할 나의 질문들을 필사적으로 뇌가 떠올리고 있는 것인지, 원래는 끊임없는 자극과 반응 속에서 억제되던 심상들이 침묵하는 지금에서야 떠오르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느끼는 것은 나의 생각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최근 일의 연쇄들이 떠오른다. 서걱서걱. 며칠전 해본 유형 검사에서 나는 왜 내가 싫어하던 유형의 사람이 되어버렸는지, 원래의 유형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유형이 바뀌어버린 건지, 유형이 바뀌어 받아들일 수 있기에 이런 일이 생기고 뒤따라 온 것인지,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서걱서걱. 도통 심각한적 없던, 늘 장난스럽던 친구는 그날 나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위로한 것인지, 그 걱정이 의미하는 바와 향한 곳에는 무엇이 서 있었던 것인지,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서걱서걱. 나는 왜 그 말 많던 미용사를 찾아 이곳에 온 것인지, 사실 그날 머리는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얼굴도 사람도 기억하지 못할거라면 나는 왜 이곳에 앉아 머리를 자르고 있는 것인지를 떠올린다. 전날 꿈을 떠올린다. 문 밖에 누군가 찾아와 문을 부술듯이 두드리고 나에 대한 증오를 뱉어내는 꿈. 나는 왜 그런 꿈을 꿨는지, 그 꿈 속에서의 나는 왜 그렇게 그들을 두려워 했는지를 떠올린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도 아니라는 듯, 미용사는 머리 자르기를 멈추고 머리를 감으러 가자 말한다. 생각을 멈추고 거울을 본다. 한층 잘려나간 머리를 보고 나니 머리가 가벼운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에는 머리를 감고, 완성형을 갖추느라 그와 계속 대화를 한다. 자극과 반응이 시작되고, 나는 다시 돌아간다. 머리가 가벼워진 채로 나는 미용실에서 나왔다. 나는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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