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지금,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서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찾는다고 해도 아이가 잠든 밤이나 아이가 깨기 전의 새벽에만 가능해진 일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데에 많은 것을 감수하고 산다는 문장을 체감하고 있다. 아이가 깨기 전의 새벽엔 늘 책을 한두 권 정도로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습관을 유지한 지가 벌써 8개월이 넘었다. 처음엔 ‘불면증’이 있어 쉬 오지 않는 잠을 불러오려고 시작한 습관이 어느새 건전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새벽이 되었다. 늘 그렇듯 잠든 아이의 이부자리를 살피고 나서야 책 한 권을 집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 넘길수록 잊었던 나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어린 나의 시선에는 주방이 늘 밝게 빛났다. 주방의 전등이 아른거릴 때 궁금한 마음에 문을 슬쩍 열어 보니 엄마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밥솥에서 밥이 익는 냄새와 함께.
엄마가 되어가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
소리의 부재 속에서 성장한 딸의 잠든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의 아지트에서 마음을 매만지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가족을 위한 맛있는 식사를 차리는 곳이 ‘주방’이었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앞서 마음을 달랬던 아지트도 ‘주방’이었다.
지금의 나는 주방에서 책을 읽으며 아이가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기다렸다.
책을 읽으며 지나간 엄마의 일상을 찬찬히 떠올리는 시간으로 채웠다.
‘소리의 부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뿐인데 여전히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살짝살짝 흔들리는 엄마 앞에서 예준이는 변함없이 엄마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엄마 아빠와 다르게 더 많이 눈 맞춤을 하고, 손으로 더 많이 보여주려는 그 이야기에 눈을 기울이는 예준이를 통해서 나는 하루가 갈 때마다 한 뼘 더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역시 6시 정각이 되자마자 아들 예준이와 아침 인사를 나누며 포옹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