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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Jun 18. 2020

10. 방법은 달라도 마음은 같은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방법은 달라도 마음은 같은 엄마의 ‘구연동화’     

예준이가 요즘 빠져 읽고 있는 동화책들을 찬찬히 훑어봤을 때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바로 어렸을 때 내가 엄마 앞에 서서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리의 부재’ 가운데 커가면서 엄마의 입 모양을 보고 따라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에 동화책을 읽던 중에 엄마의 기준에서 들었을 때 내가 말하는 ‘가’가 제대로 된 발음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말해 봐도 ‘가’가 ‘카’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땐 ‘아’가 되어 버렸다. 엄마와 나는 늘 아침에 기차를 타고 간 충주성심학교 유치부에서 입 모양을 읽는 방법과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오후에는 아침에 배웠던 발음 방법을 다시 복습하거나 미리 예습하는 등의 일상을 보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먼저 컵에 물을 받아다가 내가 그걸 마신 후 삼키지 않고 입안에 머금는다. 잠시 머금은 물을 목젖 뒤로 넘기며 헹구는 소리가 나는 듯이 ‘가~가’ 소리가 나야지만 성공이었다. 그런데 나는 계속해서 물을 마시기만 하고 ‘가~가~’ 소리는 나질 않았다. 연거푸 물배를 채운 나는 금세 지루해졌고, 그걸 지켜본 엄마는 이내 마음을 접은 채 저녁 식사 준비를 하셨다. 몇 분이 지난 후 나는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고, 다시 물을 입안을 헹구는 듯이 ‘가~가~’ 소리를 내봤다.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느라고 바쁘셨던 엄마는 딸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더니 이내 나에게 깨소금으로 덕지덕지 묻은 나무주걱을 쥔 채 달려오셨다.      

“그래, 가~가! 맞아!”     

그 날 저녁 식사 시간에서 엄마는 딸의 ‘가’ 발음 성공기를 퇴근하고 온 아빠에게 들려주셨고, 대견하다는 눈빛을 가득 받으며 밥을 먹었던 기억이었다. 물론 내 기억과 다르게 실제 언어 훈련 과정은 나도, 부모님도 견뎌야 했던 시간이 힘들었음에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헤쳐 나온 것 같다. 그렇게 동화책에 빠져 있던 예준이의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며 추억을 더듬었다.

보통의 엄마는 자신의 무릎에 아이를 앉혀 두고 목소리를 내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익숙할 것이다. 나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지 않는 대신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책을 펼쳐놓고 수어와 목소리, 그리고 몸동작을 크게 해서 책 속의 주인공이 하는 동작을 따라 아이에게 보여준다. 아이는 나의 움직임에 따라 동화책을 번갈아 보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예준이를 통해 어렸을 때의 내가 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말없이 바라보시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났다.

 틀려도 괜찮다. 너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도 마찬가지였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눈으로, 손으로 보여주는 구연동화는 어땠을까?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물어보기엔 아이의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였다.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마주 대하는 내 마음도 동화책의 주인공처럼 기분 좋은 표정을 짓으며 마저 이야기를 이어 갔다. 동화책의 그림을 한번 보고, 엄마의 얼굴을 보며 이내 미소를 짓었다가 박수도 쳐 주는 아이에게 새삼 고맙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손으로 읽어주는 구연동화가 마음에 쏙 들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봤을까?

동화책의 주인공인 아기 사자가 대신 말한다.

엄마 사자가 풀숲에서 뛰쳐나와 무서운 늑대 무리에게
 '어흥~'하며 나를 지켜 주셨어요.

그렇게 나는 나의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앞서 아이의 손을 맞잡으며 엄마만의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도. 엄마의 따뜻한 체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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