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함께’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소통’
책에서도, 여러 글에서도 밝혔듯이 어렸을 때 특수학교에서, 가정에서도 언어 훈련을, 즉 입 모양을 보고 맥락을 파악하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서 청력 검사를 받고 나서 ‘청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쭉 나는 ‘소통’의 사각지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다.
이 사회에서 음성언어로 맺어진 다수와 이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배웠던 ‘부모의 언어’였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두 가지 공용어가 있다. ‘한국어’와 ‘한국수어’.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면 언어 치료와 청각 보조기기는 ‘청각장애인’에게 다수가 사용하는 음성언어가 가득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일 뿐, 장애를 극복해서 얻은 산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보이지 않은 차별이 가득한 사회 안에서 딸이 스스로 걸어 나가 생각과 감정을 잘 피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여 애쓴 시간이 부모님의 시절에 가득했던 것처럼. 물론 이 생각거리를 ‘농인’과 ‘농인의 삶’, ‘농인의 언어’라는 틀 가운데에서 바라봤을 때 그리 탐탁스레 생각하지 않을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존중한다. 오래전부터, 나보다 더 일찍 문화적인 의미를 눈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분들인 만큼 존중하고 있다. 다만 ‘농인’과 ‘청각장애인’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사람들을 위해 포용할 수 아는 자세를 부탁드리고자 한다. 오랫동안 음성언어 위주의 사회 안에서 소통의 기준이 아닌 의미를 방황하며 찾아온 나에게 ‘수어’는 곧 보이는 언어가 되었다. ‘수어’를 통해 ‘수어 통역사’의 피땀을 알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내용은 ‘농인’이 있기에 ‘수어 통역사’도 존재한다고 한다.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가 아닌 누가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대한 자체가 중요한 일이다. 얼마 전에 회자되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한 배우 조정석의 자연스러운 수어 연기에 많은 농인과 수어 통역사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이 사회에서 ‘수어’가 보다 많은 사람이 알아가야 할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이 마음을 품으며 ‘농인화’ 되어 가고 있는 사람이다. 태어나서부터 농인의 삶과 문화가 아닌, 부모와 사회의 언어인 ‘한국어’를 가장 먼저 배운 나는 이제야 농인의 삶과 문화, 그리고 언어를 알아가고 있다. ‘농인’과 ‘청각장애인’이라는 차이 속에서 오늘도 삶을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처럼, 나와 다를 수도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차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진짜 나의 언어가 아닌데도 스스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고, 그 노력은 사회 안에서 다수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또 애썼고, 앞으로도 마주할 차별과 차이, 그리고 경계선에서 잠시 왔다가는 좌절과 편견 가운데 씩씩하게 살아갈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물론 ‘수어 통역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언어는 ‘한국어’이지만 함께 걸어가고 있는 ‘농인’들을 이해하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언어를 다시 사회로 말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노력과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를 챙기고 위로하기도 바쁜 가운데 그들을 향한 비판이 아닌 살아온 길을 바탕으로 이해와 존중을 먼저 보여주고 이끌어 가는 ‘자세’야말로 농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기본을 알았으면 좋겠다.
‘농인’과 ‘청각장애인’ 사이에서 헤매고 있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과 그들을 다독이며 수어와 눈빛으로 응원해 주는 수어 통역사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