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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샛별 Jun 17. 2020

#9. 다른 듯 같은 듯,
  엄마의 아침 일상  

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다른 듯 같은 듯, 워킹맘 엄마의 아침 일상     


늘 어린이집에서 책을 읽어달라며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간다는 예준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 아빠의 서재가 있는 방으로 달려가 동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아침부터 혼자서 안락한 침대 위에서 부지런히 읽는다. 그 사이엔 엄마는 출근 준비를 한다. 엄마의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면서도 시선은 예준이에게 가 있다.

덜 말려진 머리카락 사이에 희미한 물방울이 엄마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따뜻하게 데워진 국과 그리고 예준이가 좋아하는 브로콜리 반찬이 올려져 있는 식판을 들고 외친다.

‘밥’ ‘먹다’ (수어와 목소리, 동시에)     
“예준아, 밥 먹자!”     

나는 전의 글 내용처럼 선천적인 달팽이관 기형임에도 엄마의 헌신을 통해 입술 모양을 읽으며 이야기를 파악하며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예준이와 대화할 때는 예준이가 수어를 보고 이해하기 위해 목소리와 수어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수어부터 먼저 가르치는 일부 농인 부모도 있다. 늘 그렇듯 양육에는 지침서가 가득하지, 정답은 없다. 부모의 마음가짐에 따라 아이는 저마다 성장하고 있기에. 밥 먹자는 엄마의 목소리에 요지부동인 예준이가 있는 서재에 들어가 다시 한번 외쳐본다.     

“예준아, 밥 먹자!” “밥 먹고 어린이집에 가야지?”     

아기 사자 사진이 인쇄된 책을 한참 들여다보던 예준이는 슬쩍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책을 본다. 엄마의 묘책은 그 책을 가지고 와서 아기 의자에 놓는 일이었다. 그렇게 예준이는 책을 보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몇 분이 더 지났을까. 식판이 거의 깨끗해질 즈음에 입안 가득 오물거리던 예준이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예준이의 손가락 끝을 따라 엄마의 시선은 파란색 손잡이 물병에 멈췄다. 역시 물을 달라는 눈빛은 맞았구나 싶었다.      

“그래, 물을 마시고 싶었어?”     

입안 가득한 밥알을 목 뒤로 넘기고 책을 더 읽으려는 지 벌컥벌컥 물을 마신다. 그렇게 책 덕분에 예준이의 아침 식사는 책 속에 그려진 아기 사자의 온순한 표정처럼 잘 끝났는데 벌써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가까워지자 엄마도 출근 준비를 마저 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현관 앞에서 구두를 신고 책을 보는 예준이를 불러본다.      

“예준아! 가방 챙기고 신발 신자?”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을 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시계 초침이 째깍거리는 듯이 조마조마하다. 할 수 없이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 들고 예준이의 손을 잡아 현관 앞으로 이끌고 왔다. 그런데 예준이는 엄마의 손을 딱 놓더니 다시 거실로 향한다. 알고 보니 엄마의 출근길에 함께 하던 가방을 깜빡했다. 예준이는 늘 보던 가방이라 엄마의 가방을 낑낑대며 들고 온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엽고 기특해서 예준이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 칭찬 한마디도 잊지 않고 말한다.

“아유~ 엄마 가방도 가지고 왔네, 잘했어요~”     

아침에 걷는 길은 늘 바쁜 마음이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렇다. 상기된 표정으로 걸어가는 직장인부터 덜 가시지 않은 졸음을 떨치려고 눈을 비비는 고등학생까지. 예준이는 유모차 안에서 엄마가 보는 아침의 풍경을 같이 바라본다. 그런데 알고 보면 예준이의 시선은 엄마의 시선과 남달랐다. 엄마의 시선은 건물과 차량, 사람들에게만 머물렀고 예준이의 시선은 참 다양했다.     

짹짹 지저귀는 참새들과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그리고 지붕 위에서 아침잠을 즐기는 고양이. 그리고 집 앞 공원에서 운동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기척 소리까지.

예준이의 손가락 끝이 향해 있는 풍경마다 내 시선은 잠깐잠깐 달라지기도 했다. 일상의 소리를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을까. 예준이는 유모차 안에서 열심히 엄마를 뒤돌아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엄마! 저기, 저기”
“강아지가 풀 냄새를 맡고 있네?”     
“엄마! 저기, 저기”
“아~ 저기 참새가 짹짹 인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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