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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둘이 삽니다

네? 두 명은 가족이 아니라고요?

네? 두 명은

가족이 아니라고요?


신혼 초에는 ‘2세’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자 순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늘 안부인사처럼 나의 가족계획을 물었다. 순리대로 살지 않는 이유에 대한 호기심 어린 말투로. 그리고 마치 이야기 중에 불현듯! 생각나서 말하는 것처럼.


“저희 가족계획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혹은 “아이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고 허허 웃으며 그냥 할 말 안 할 말 다 하고 살면 좋으련만. 대화 스킬 따위 없는 나로서는 그 질문 자체가 너무 불편했다. 그냥 대충 둘러대기엔 또 거짓말하는 것 같아 싫고, 그렇다고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기엔 구차해서 싫고.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면 그만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스스로에게는 마음속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서도 심각하게 고민 중인 이야기를 굳이 사람들에게 공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의 선택이고 우리의 인생이니까.


언젠가부터 그런 질문이 내게 올 때마다 그 질문은 ‘‘언제 밥 한번 먹어요’와 같은 인사치레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조금은 후련했다. 그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래, 인사치레와 같은 말.
웃으며 대답하고 쿨하게 그냥 넘겨보자.



“아이는 언제 가져요?”

“글쎄요” 혹은 “아직이요” 혹은 “그러게요”

이것도 아니면 “일해야죠”



하지만 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은 때때로 틀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궁금해 죽겠는 사람들은 항상 말을 이어간다.


“일단 갖고 나서 생각해” (어쩜 그리도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죠?)

“애만 낳으면 어떻게든 다 돼” (대체 뭐가 어떻게든 되나요? 궁금합니다)

“아이 가져서 애국해야지” (저는 다른 방식으로 애국할게요)

“그래야 노후에 안 외롭지” (세상에, 외롭지 않으려고 아이를 낳나요?)

“아이가 있어야 비로소 가족이 완성되는 거야” (네??)


그동안 내가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은 ‘아이가 있어야 비로소 가족이 된다’는 말이었다. 어머 세상에, 그럼 우린 아직 미완성 가족인 거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있단 말인가. 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 그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던데. 이미 법적으로 결혼하여 가족인 우리는 그럼 아직 미완성된 가족인 걸까?


 




둘이 삽니다


2013년 가을, 우리는 첫 신혼집이었던 반지하집에서 거의 탈출하다시피 이사를 왔다. 이전 반지하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축빌라로. 물론 90% 가까이(은행 대출) 우리의 것이 아니었지만, 일단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던 그 반지하가 아니어서 좋았다. 깨끗하고 하얀 3층 집의 모습은 작긴 해도 우리 집이라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충분히 행복하게 해 주었다. 마치 상황이 좀 더 나아진 기분이었다.


그 사이 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써는 재미없지만 제법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다. 불안정했던 회사 생활에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월급도 곧잘(?) 나오고, 사는 집도 이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고. 빚도 열심히 갚아나가고 있으니, ‘아이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제법 안정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계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안정적인 삶은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개선될 수 있지만, 마음의 안정적인 삶은 별개의 문제였다.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 아이를 가져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훨씬 더 많이 했다. 안타깝게도 ‘좋은 부모’의 모습은 내 인생에서 겪어보지 못한 막연한 모습일 뿐이었으니까.  


매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늘 서로 이야기했다. 단어조차 어색한, 그리고 여전히 낯설기만 한 ‘엄마’라는 역할을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고, 지난날의 나의 아픔을 아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편 또한 지금까지 겪어온 가난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우리에게 놓인 현재의 무게감은 생각보다 컸다. 상황이 좀 더 나아진듯한 건 정말 기분일 뿐이었다. 차라리 아이 없이 우리 둘이라면, 그래도 고난과 역경 따위야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듯이 말이다.





인생에 행복과 불행은 늘 공존한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픔 속에서 성장과 더 나은 행복을 느끼기도 하니까. 하지만 만약 나의 아이가 생긴다면, 적어도 나는 그 약간의 불행조차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이라는 구성원 속에서의 내 성장기 속엔, 안타깝게도 행복이 없었다. 겪지 못한 걸 미래의 아이에게 물려줄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우리 아이는 갖지 말자.
우리 둘이 잘 살아보자.


외롭지 않기 위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가족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닌(애국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닌), 나와 남편을 위한 결정이었다. 아이를 통해서만 비로소 완전한 가족 구성원이 된다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우리는 조용히, 우리끼리 반기를 들기로 했다.


8년 전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스몰웨딩’이란 말은 단어조차 생소했었는데, 몇 년 사이 스몰웨딩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시대는 점점 1인, 2인 가구가 늘어난다. 아이 없는 부부를 뜻하는 ‘딩크족’이라는 말도 제법 흔해졌다. 사회 현상이든 뭐든, 우리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친구의 아이가 유치원엘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우리는 오롯이 우리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가수 이효리가 그랬던 것처럼,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즐겁고 신나는 날들. 우리는 8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언제나 그렇듯, 소소한 우리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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