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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부부의 여행

여행이라는 낯선 단어가 익숙한 단어가 되기까지

대학생 시절, 방학 때 아르바이트나 겨우 하는 나는 주변에 배낭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마냥 부럽고 대단해 보였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내 삶을 눌러댔던 건지, 중간에 휴학을 해볼 생각도 해보지 못한 나와 달리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가거나, 활발하게 디자인 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 동기들을 보며 부러움을 삼켰다.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수업 시간표를 짜고, 잠깐의 공강에도 학과 사무실 근로를 하며 보내는 일은 4년 내내 이뤄졌다. 휴학도 없이 빽빽하게 4년을 꼬박 보낸 대학 생활은 나에게 수천만 원의 학자금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남겨주었다.


그래도 대학을 다니던 동안에는 그나마 즐거웠던 것 같기도,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한 4년간의 대학생활을 끝내자마자 나는 부리나케 취업을 했다. 잠깐의 쉼도 허용하지 않은 채 스스로 빽빽한 삶을 자초했으니, 내 인생에 ‘여행’이라는 단어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돈에 얽매여 이상하게 자꾸만 늘어나는 집안 빚만 갚아나가는 그저 그런 삶. 가족 간에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보려 애썼지만 나 말고는 그 실타래를 풀 의지도, 생각도 없는 가족 사이에 혼자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든 풀어보겠다고 버둥거리고 있을 때 남편을 처음 만났다.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듯 삶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던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흔들리다 못해 쓰러져버리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고

가장 먼저 실천한 일


우리 둘이 잘 살아보기로 결정을 내린 이후, 즐겁게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일은 ‘여행’이었다.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나 일본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막연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여행’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질 수 있도록 틈틈이 다녀보자며 남편이 말했다. 가방 들고(혹은 가방 없이) 그저 떠나면 되는 것인 여행인데, 무언가 대단한 다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여겼던 그 당시엔 그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첫 신혼집에서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고, 우리는 결혼 후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지는 강릉. 지금 체력으로는 이제 ‘할 수 없는 일’(이미 수년 전에 나이 앞자리가 바뀌어버린 30대와 40대인 나와 남편에겐 그저 희망사항)이 되어버린, ‘늦은 밤 기차표를 끊고 정동진 해돋이를 보는 것’이 우리의 첫 여행 일정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밤 열한시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새벽 4시 반, 정동진역에 도착했다. 몽롱한 정신에 비해 들뜬 마음은 누가봐도 설레는 여행자였다. 일출을 기다리기 위해 모두가 들어가 앉아있는 카페에 가 하염없이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일출을 넉 놓고 바라보며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함께 본 첫 일출. 사진은 남편 작품.


‘여행 계획’이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본 여행 일정은 엄청나게 빽빽했다. 꼭두새벽부터 거의 해질녘까지, 우리는 숙소 한 번 들어가지 않고 강릉의 명소를 대부분 다 둘러볼 정도였으니. 사실 나보다는 여러모로 경험이 많은 남편이 나보다 더 효율적으로 준비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남편은 그저 내가 가고 싶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100% 200% 믿고 따라주었다.


여행이라는 낯선 단어가 익숙한 단어가 되기까지,

우리는 익숙한 환경에서 낯선 환경으로의 여행을 틈틈이 이어갔다. 


우주, 혹은 불입국 국가가 아니면 요즘은 웬만하면 다 갈 수 있는 시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환경을 떠나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는 건 설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행할 때마다 그런 크고 작은 두려움을 이겨내면, 그것만으로 삶이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점점 여행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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