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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발맞추어 걸어가기

여행하는 방법

여행하는 

방법


두 번째 이사 후 다녀왔던 첫 번째 여행에 이어 우리는 2015년도에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갚아나가야 할 빚은 여전히 많았지만 어차피 그 많은 빚을 한방에 다 갚을 수 없는 일이라면... 그 돈에 유럽여행 왕복 비용 정도 더 추가된다고 우리에게 크게 달라질 게 아니었다. 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과감한 결정이었고 그때의 결정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시간을 내어 종종 여행을 떠난다.


두 번째로 갔던 프라하 여행은 크리스마스 기간이었다.

세계 여행하듯 많은 나라를 여행한 건 아니지만, 그때 처음 프라하와 런던을 여행한 뒤로 가깝게는 후쿠오카와 오사카, 교토, 도쿄를(지금은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세 번이나 다녀올 만큼 자주 여행했다), 멀리는 암스테르담과 델프트, 프라하와 드레스덴을 여행했다. 길어야 일주일을 겨우 시간 낼 수 있다 보니 우리는 갔던 곳을 자주 여행하게 되었다. 처음 갔던 3일간의 프라하 여행이 아쉬워 그다음엔 6일을 다녀오고, 3일간의 교토 여행이 아쉬워 5일을 다녀왔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탐닉보다 지난 여행의 아쉬움을 다음 여행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채워나가는, 주로 낯선 여행지를 익숙한 곳으로 만들어나가는 여행. 그러다 보니 우리가 하는 여행은 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적극적인 사람의 여행 스타일에 비해 다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들에 비해 잘 먹고 다니는 여행도(맛집 투어 따위 없는 여행), 다양한 곳을 많이 다니는 여행도(효율적이지 못한 여행)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각자 살아온 인생이 다 다른데 여행하는 방법이라고 모두 같을 수 있을까? 매번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가 있다면, 아쉬움에 다시 한번 찾아가고, 그러다 보니 점점 좋아 익숙해지다 못해 이제는 마냥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 곳을 가고 또 가는 여행자가 있을 수도 있는 법이지. 


만약 여행하는 방법에 ‘정답’이 꼭 있어야 하는 거라면 오히려 ‘각자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여행’이라는 말이 정답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늘 남편과 함께 여행하며 마음에 품게 된 ‘여행하는 삶’이라는 말. 사실 마음에 품긴 했지만 무언가 막연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여행하는 삶이라는 말은 어쩌면 ‘여행을 통해 삶을 살아간다’는 말인 것 같다.





발맞추어 

걸어가기


어디를 가거나, 무언가를 먹을 때, 무언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남편은 늘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먹고 싶은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지. 철저히 나에게 맞춰주는 행동들이다. 사실 남편에게 결정을 넘겨도.. 어차피 결정은 나에게 달려있다. 마치 답정너 같은 나. 아, 어쩌면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겠구나.


“뭐 먹을래?” — “뭐 먹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잘 모르겠어, 오빠가 결정해”

“쌀국수 먹을까?” —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찜닭 먹을까?” — “아니 그거만 빼고”

...

(이하 생략)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도,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남편은 늘 나에게 맞춰준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건, 우리 둘 다 아직까지는 휴양지에 감흥이 없으며 비록 결정은 내가 하지만 가고 싶은 여행지가 사실 비슷비슷하다는 것. ‘여행’에 있어서 첫 단추나 다름없는 여행지를 고르는 성향이 얼추 비슷한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서로 발맞추어 잘 걸어가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잘 맞았던 건 아니다. 처음엔 결정을 무조건 나에게 떠넘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마치 여행 안 가고 싶은데 나 때문에 억지로 가는 것처럼, 여행 계획도 그냥 귀찮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싸웠다! 아니 대체 왜 맨날 나보고 결정하라고 하는지, 여행을 정말 가고 싶긴 한 건지 쏘아붙이며 이야기하는 나에게 남편은 한결같이 자기는 뭐래도 상관이 없단다. 그럼 또 나는 왜 상관이 없냐고 또다시 쏘아붙인다. 또다시 돌아오는 그의 대답이란 것은.


그냥 같이 다니는 것 자체가 나에겐 여행이야


아 뭐야, 이 사람. 굉장히 오글거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근데 좀 멋지다,

역시. 그래서 내 남편이구나.


발맞추어 같이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발걸음을 서로 맞춰 걷기 위해 누군가는 그 걸음을 지켜봐야 했다. 그건 속도가 될 수도 있고,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테마에서 시작과 끝을 잘 맺기 위해 내가 먼저 ‘계획’으로 나아가면, 남편은 그런 나를 지켜보며 옆에서 발을 맞춰 함께 걷고 있는 것이었다.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겐 여행이라는, 내 평생에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 언제든 어디든, 무얼 하든 나와 함께 발맞추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여행 메이트가 남편이어서 좋다. 


자, 그럼 나는 이제 다음 여행을 준비해볼게,

우리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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