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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시발 비용을 줄여보자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서

결혼 직전 갑자기 망해버린 회사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던 그 시절부터 나는 어떻게든 빈 곳을 메꿔보고자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도 다른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전문직인 디자인이 내 일이어서, 아예 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주변에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소개받았다. 간단한 전단지나 현수막부터, 회사의 카탈로그까지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다 했다. 그때부터 나에겐 정말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 결과물이 포트폴리오처럼 쌓였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외주로 받아온 디자인 일을 해내느라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일이 허다했다. 피로가 누적되고 누적된 피로만큼 짜증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 짜증은 고스란-히 같이 사는 남편에게 돌아갔다. 


가리지 않고 다 받아서 일을 해서 인지, 외주로 받아오는 일은 생각보다 꾸준하게 들어왔다. 당연히 부수입도 점점 늘어났다. 어떤 달은 우리가 근사한 곳에서 외식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이, 또 어떤 달은 심지어 월급보다도 더 많은 수입이 생기기도 했다(월급 자체가 워낙 적었던 걸 수도 있지만). 


일단 부족한 부분이 메꿔져서 좋았다. 몸은 고되지만, 벌어들이는 수입이 생각보다 짭짤하니 괜찮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받는 월급 외에 생기는 수입은 그저 ‘부수입’이라는 생각이 크다 보니, 나는 그 수입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 누적된 피로와 짜증으로 인해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틈날 때마다 부수입으로 해결해버렸다. 애초에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로 시작한 일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론 아무 소용이 없었다. 5만 원, 10만 원 쓰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소위 말하는 ‘시발 비용’ 같은 그런 거. 그간 정말 엄—청 썼다.


분명 조금씩이지만 월급을 제외하고 돈을 더 벌긴 하는데 속내는 그만큼 돈을 써대고, 피로도 쌓이고 짜증도 쌓이고. 그 짜증이 싸움으로 번지고. 점점 생활이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벌어서 부족한 돈을 메꾸는 건 결국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고자 함이었는데, 나의 피로와 짜증으로 우리의 행복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잘못 흐르고 있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 했다.





 나은 

행복을 위해


우리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잦아든 싸움은 나의 짜증이 원인이었고, 나의 짜증은 나의 피로 때문이었다. 이 피로의 원인은 결국 외주 일을 무리하게 받아오는 데에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자, 그럼 외주 일을 하지 말자!


사실 이 말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 끝날 일이었지만 나는 또 다른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건 바로 다양한 형태로 쌓인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생각한 ‘프리랜서’로의 가능성. 막연하긴 해도, 조금의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회사에 속해 그 구성원이 되어 매번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일을 하던 것에 비하면, 외주로 받아온 일은 무료한 회사 생활에 청량감을 선사했다. 물론 그 역시 돈으로 얽혀있는 것이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구상하고 전체를 스스로 컨트롤하며 창작할 수 있는 그 시간은 매번 신선했다. 물론 처음 시작은 돈 때문이었지만, 외주로 받아오는 일 자체가 점점 흥미로워지기도 했다. 


회사를 안 다녀도 좋아,
네가 좀 더 즐거울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


외주 일을 다 접고 그냥 회사 생활에 만족하느냐, 아니면 좀 더 즐거울 수 있는 일에 지금이라도 도전해보느냐. 이런 나의 고민에 남편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일을 안해도 좋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좀 더 즐거울 수 있는 일에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수입은 어느 정도 괜찮지 않을까? 설령 수입이 조금 적어지더라도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줄어들 테니 짜증도 덜 날 거고, 늘어나는 시간만큼 돌보지 못한 우리의 삶을 조금 가꿀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을 좀 더 챙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듯한 생각들. (비록 내가 잘 만들지 못하지만) 함께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곳에 가서 서로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며 종종 떠나던 여행지에선 기념품 고민을 좀 덜 해도 되는, 어찌 보면 소소한 일들, 그런 상황들. 계속되는 고민 끝엔 늘 남편과의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결국 자의로, 타의로 옮겨 다녔던 8년 가까운 회사생활은 2016년 부로 끝이 났다. 

그리고 곧바로 나의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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