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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17. 2019

회사생활의 끝, 프리랜서가 되다


느지막한 아침,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의 키보드를 투닥거리다 창밖의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을 하다가 다시금 일에 몰두하는 모습. 그러다 따가운 햇살에 나른해진 오후, 잠시 멍 때리며 앉아 있다가 기지개 한 방으로 다시 정신을 차려보는 모습. 왠지 ‘프리랜서’라고 하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았을 그런 모습. 프리랜서가 되면 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프리랜서가 되니 그럴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우선 집 근처에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없기도 하지만 커피숍에 가겠다고 짐을 꾸려 나가려니, 챙겨야 할 짐이 만만치 않았다. 일단 묵직한 15인치 노트북,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연결 배터리, 그리고 이제는 없으면 불편한 태블릿 펜에 일정 체크를 위한 다이어리까지 챙겨 나가는 건 나에게 꽤 버거운 일이었다. 남들은 노트북을 잘도 들고 다니던데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저질체력인 걸까.


아등바등 짐을 챙겨 나가도 문제다. 세상 쫄보인 나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커피숍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는 일 자체를 하지 못한다. 왜냐고? 누가 내 노트북 훔쳐갈까 봐.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커피숍에 앉을자리에 짐을 놓고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의 치안은 훌륭한 수준이라지만 나는 괜히 불안하다. 그래서 종일 집에서 작업하는 생활에 답답함을 느꼈던 프리랜서 생활 초창기엔 카페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최대한 참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그때 짐을 챙겨 화장실에 갔다. 혹시라도 노트북이 사라진다면.. 내 모든 작업들과 진행 중인 작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그런 끔찍한 일이 온다는 건데, 아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러다 2017년 봄, 우연한 기회로 공유 오피스에 6개월간 저렴한 임대료로 사무실을 공유하게 되었다. 서울의 중심 을지로 한복판에 커다란 창문 아래로 명동 성당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세련되고 멋진 공간. 이런 공간에 있으니 마치 성공한(?) 프리랜서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자유로웠어도 역시 돈에 자유롭지는 못했다. 아무리 저렴한 임대료라고 할지언정 오가며 쓰는 차비에 식비까지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들었던 금액을 가볍게 여길 순 없었다. 분명 나는 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인데.. 직장인처럼 매일 출근하듯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렇게까지 다니면서 내심 기대했던 일은 말 그대로 ‘공유 오피스’의 최대 장점인 ‘커뮤니티를 통한 협업의 가능성’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서로 다른 사람들, 프리랜서, 사업가, 소기업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소파에 드러누워 일하는 사람, 무한 리필되는 맥주를 마시며 회의하는 사람, 여러 사람들과 다트 게임을 하는 사람, 그 안에서 서로가 공통분모를 찾고 협업점을 찾아 함께 일을 해나가는 것, 그런 기대감.


아 근데 소처럼(?) 열심히 일만 할 줄 알지 영업력은 제로, 아니 마이너스인 나로서는 그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 나는 그저 굉장히 소극적인 프리랜서일 뿐이었다. 게다가 프리랜서의 클라이언트가 나와 같은 프리랜 서면 몰라도, 대부분 회사이다 보니 미팅을 하더라도 내가 그리로 갔지 클라이언트를 이곳으로 부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언젠가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들어올 때,
그때 사무실을 구해보자. 지금은 아니다.

이런저런 상황과 가능성 등을 염두하며 보낸 6개월의 시간은 프리랜서로서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는 게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지를 알게 했다. 나는 여러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다니며 그 안에서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찾고 함께 일을 해나가는 기회가 있는 공간보다, 지금 나와 연결되어 있는 클라이언트들의 일을 좀 더 진득하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였다. 꼭 공유 오피스에 있어야만 프리랜서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리 공유 오피스가 요즘 트렌드여도,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속도에 맞추는 게 먼저였다.


6개월의 공유 오피스 생활을 마치고,

나는 다시 집 안에 작업실을 얻기로 했다.

집 안의 작업실, 집업실 오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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